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삐삐롱스타킹이라는 밴드가 생방송 도중 카메라에 침을 퉤 뱉는 사고를 쳐 도마에 오른 일이 있었다. 이들은 ‘방송에 1년 동안 코빼기도 내밀지 말라’는 중징계를 당했고, 여론은 ‘무엄하다’, ‘말세다’ 등을 외치며 성난 얼굴로 혀를 차는 가운데 ‘그래도 그들에게 뭔가 심오한 이즘(ism)이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을 발동했다. 그러나 당시 삐삐롱스타킹은 나른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향한 칼날과 호기심에 응했다. ‘모든 게 쇼였다’고. ‘다들 쇼하며 살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 ‘쇼’라는 한 글자는 정색하는 직업 정신에도 어퍼컷을 가해 이후 엔터테인먼트업계의 크고 작은 화제를 대하는 딴딴한 줏대가 됐다. ‘세상 만사가 결국은 다 쇼다’라는 인식은 초월적인 시선을 동반하게 마련이라 ‘논란’, ‘소동’ 등의 표제를 단 화끈한 사건을 마주해도 웬만해선 동요없이 ‘쇼하고들 있네’라며 건방지되 속 편한 반응을 튕겨낼 수 있었다.
그런데 6월27일 첫탄을 내보낸 케이블채널 Mnet의 <미려는 괴로워>에 대해서만큼은 그 ‘심드렁하게 웃고 넘기기’의 입장을 견지하는 게 버겁다. 페이크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사모님’ 김미려의 전신개조 가수 변신기를 다룬다는 이 프로그램은 제목대로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가상 스토리를 손에 잡히는 ‘진짜’ 이야기로 돌리겠다는 야심을 내비친다.
엔터테인먼트 세상을 누비는 갖가지 ‘트루 라이즈’들 가운데 진실한 다큐인 체 군다는 점에서 많이 발칙한 형태에 속하는 페이크다큐멘터리는 케이블채널의 독한 재기를 상징하는 한축도 돼왔다.
페이크다큐멘터리는 논란을 잉태한 장르다. 처음부터 가짜라고 말하면 장르의 힘이 사실상 소멸하기 때문에 제작진은 함구한 채 진실게임을 겨냥한다. 그런데도 나중에 그 사실을 안 사람들은 ‘속았다’고 허탈해하고, ‘왜 기만했으냐’고 질타한다. 그랬다가 페이크다큐멘터리라는 근사한 용어를 내밀어 새로운 시도를 관대하게 즐겨달라고 말하면 슬그머니 승복한다. 몰래카메라를 가장해 인간사의 요지경을 재연하는 tvN <독고영재의 현장르포 스캔들>도 유사한 과정을 거쳤다.
조작 논란에 휘말리며 요란하게 출발한 <미려는 괴로워>도 페이크다큐멘터리의 속성 및 유통과정을 좀더 적극 활용한 사례일지도 모른다. 이 프로그램은 첫 방송에서 김미려가 생방송 음악프로그램 출연 도중 갑자기 울며 뛰쳐나간 2개월여 전 ‘실제 사건’을 ‘재연’했다고 주장하며 그 사건을 계기로 더이상 울지 않는 날씬한 가수 김미려의 탄생기를 만들게 됐노라고 설을 풀었다.
그 주장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페이크다큐멘터리가 아니다. 김미려의 전신개조 과정이야 기획과 각본이 있는 ‘목표달성’형 리얼리티프로그램의 범주에 속하고, 김미려가 왜 탈바꿈하게 됐는지의 배경에 해당하는 2개월전 그때 그 사건도 ‘재연’이라 화면 상단에 명시한 뒤 소개했으니 ‘페이크’가 아니다.
정작 이 프로그램의 ‘페이크’라면, 현실에서 진짜 이슈로 만들어버린 용의주도한 행위를 ‘재연’이라 능청을 떤 대목에 있다. 재연이 아닌 것을 재연이라 말하며, 이 프로그램은 드레스의 지퍼가 잘 채워지지 않아서, 또 자신을 웃기는 사람으로만 봐서 속상한 김미려의 눈물이 진실이었다고 강변한다.
어떤 카오스의 쇼도 수긍할 준비가 돼있음에도 좀 질려버린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다단계 거짓말을 하고 앙큼한 ‘트릭’을 사용해서만은 아니다. 그 ‘페이크’를, 공포를 극대화하거나 인간 군상을 엿보는 수단이 아니라 절대 훼손해서는 곤란할 휴머니즘과 감동을 만드는 데까지 사용했기 때문이다. 웃음의 쇼, 오싹한 쇼는 환영해도, 인간의 아픔, 그리고 도전과 성취를 ‘조작된 쇼’로 치환할 수 있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시청자와 주인공 모두를 존중하지 않는 제작진 본위의 ‘자위와 자만의 쇼’를 그냥 속아주는 것은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