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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몸치의 스포츠 예찬
장미 2007-07-06

스포츠가 좋다. 애정의 역사가 짧으니 지식이 풍부하지는 않다. 프리미어리그를 보기 시작한 것은 2년이 채 안 됐고, K1에 어슬렁댄 지는 그보다 짧다. 주말 저녁을 일본 야구에 점령당한 것도 오래지 않았다. 여전히 AC밀란과 AS로마가 헷갈리고, 호나우두가 스페인 출신이라고 단언하고, ‘토튼넘이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한지 얼마 되지 않았냐’고 묻는 실수도 저지른다. 최홍만이나 효도르의 경기가 아니면 구미가 당기지 않고,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선수들 외에는 까마득하다. 그저 언젠가부터 호나우두가 발재간을 부리고, 효도르가 암바로 KO를 받아내고, 이승엽이 풀스윙을 휘두를 때면 나도 모를 아찔한 느낌이 뒤통수를 얼얼하게 만들어서랄까. 혹은 운동선수들도 예술가에 속한다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아서랄까. 그도 아니면, 스포츠를 무시했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랄까.

고백하건대 나는 원래 운동과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색만 보고 다들 ‘저 녀석, 잘 뛰겠는걸’ 했을지 모르겠지만, 100m를 20초대에 주파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부드러움이 관건인 춤이나 무용은 내 빳빳한 관절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요령이나 기술이 필요한 멀리던지기나 멀리뛰기는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럭저럭 공만 열심히 쫓아다니면 되는 피구나 농구 같은 구기 운동은 차라리 나았다. 끈기 싸움인 매달리기나 줄넘기, 오래달리기 따위가 체육 실기에 고민하는 내게 위안 비슷한 종목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운동에 요만큼의 재능도 갖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점차 까먹을 즈음, 스포츠댄스를 배우러 아주 잠깐 근처 운동시설에 다닌 적이 있다.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조금 나아지지 않았을까’, 근거없는 확신에 차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웬걸. 팔은 제멋대로고, 스텝은 꼬이고, 인내심은 바닥났다. 게다가 내 파트너는 왜 할아버지인 거냐고. 한껏 멋을 낸 아주머니와 손을 맞잡은 남자친구를 흘낏거리며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그리고 뻔한 결론. 한번인가 더 그곳을 출입한 나는 스포츠댄스와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당시 남자친구가 강습비 운운하며 내 연약한 양심을 수없이 찔렀음에도.

근래 웰빙 바람이 불면서 운동을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어떤 이는 헬스를 다니고, 어떤 이는 수영장을 찾고, 어떤 이는 요가를 배운다. 운동을 접할 기회도, 빠져들 기회도 훨씬 많아졌다. 스포츠댄스 강습은 불행한 결말을 맞았지만 주위의 권유에 귀기울이면서 내 생활도 조금 바뀌었다. ESPN, XSPORTS, XTM스포츠 같은 스포츠채널이나 일주일에 두번 이상 30분 넘게 조깅을 해야 몸이 불편하지 않다는 남편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자유형 하나 제대로 못해도 물에 동동 뜨는 재미로 수영장을 쫓아다니고, 브레이크에 미숙해 매번 무서운 속도로 미끄러져 내려오지만 스키장에 가기 전날은 마음이 설렌다. 심지어 주변 사람들에게 “수영장 다니세요. 너무 좋아요”라든가 “스키, 너무 재미있죠?”라는 말을 건넬 정도가 됐다.

어쩌면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체육 성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재미있기 때문에 팔다리를 움직이면서 내 운동혐오증이 사라진 것을 봐도 그렇다. 자신만 만족한다면 쏜살같이 물살을 가르거나 상급자 코스에 도전할 수는 없어도 현재 상태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운동신경 제로인 나도 스포츠를 즐긴다’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기괴한 만족감이 있지 않은가. 평생 노력해도 앙리처럼 우아하게 축구공을 차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겠지만, TV 속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흘낏거리고 몇분 불과한 운동이 뱃살의 감량에 도움을 줄 거라 내심 안도하면서 나는 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