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의 음색이 사람의 울음소리를 닮아서인가. 지난해 11월 ‘모던 가야금 정민아’라는 카피 아래 발매된 정규앨범 <상사몽>을 듣고 있으면 뮤지션 본인이 우울하고 슬픔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든다. 둥글고 부드러운 인상을 지닌 그는 엉뚱하고 웃음이 많다. “곡을 쓸 당시에는 생각보다 별 감정이 없어요.” 7개 트랙이 실린 EP 형식 앨범 <애화>의 동명 타이틀곡 제목은 그의 어머니 존함을 따서 지어진 것인데 정작 작업하는 동안엔 곡 쓰는 일에만 몰입하다 나중에야 ‘아, 엄마 생각이 나네’ 하며 그제야 주위 사람들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그는 애절한 정서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서 대상을 보는 처연한 정서가 좋다.
정민아는 국악고등학교와 한양대 음대 국악과를 졸업했다. “죽도록 노력해서 남들 가는 좋은 길을 가려고 할 땐 한번도 일이 풀린 적이 없었”다. 국립국악원에 8번 낙방하고 텔레마케터로 생계를 꾸려온 시절은 여러 기사에 실린 스토리. 그는 안양의 모 라이브 클럽에 손님으로 다니다 주말 연습실을 이용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됐고, 가게 사장님 권유로 무대에 서면서 연주곡의 허전함을 메우기 위해 보컬곡을 쓰게 됐다. 홍대로 라이브 터전을 옮긴 다음 EP <애화>를 자비로 제작해 장당 7천원씩 500장을 팔았다. “서른살 전에 자작곡 앨범을 내는 꿈은 이뤘다”는 그의 말이 소박하게 들린다.
초등학교 때 유재하음악제 2회 대상수상곡인 <거리 풍경>을 듣고 날마다 음반가게에 가서 “고찬용 1집 나왔어요?”를 묻곤 했던 그는 얼마 전 기적적으로 그와 인연이 닿아 “레슨을 받고” 있다고 한다. “제 음악을 들어봤다고, 좋긴 좋은데 기본적인 화성을 쓰시네요, 하시더라고요.” 이건 물론 단편의 예일 뿐 정민아는 이 인연이 자신에게 더 큰 배움을 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2집 앨범을 준비하기 전에 3개월간 인도 여행도 계획 중이라는 그는 “가야금이 하프처럼 조바꿈만 가능해지면 정말 세계적인 악기가 될 수 있다”며 “내가 하고 싶은 건 어떤 장르가 아니라 그냥 가야금으로 좋은 음악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집이 그랬던 것처럼 단순하게 할 말만 하고 싶어요. 하지만 더 많은 걸 알고 할 말만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건 다른 것 같아요. 이젠 알고 하고 싶고요.”
<상사몽> 소니BMG 발매
민속음악의 퓨전과 월드뮤직이 음반시장에서 상업성을 증명해주고 있는 요즘, 정민아의 음악은 장르적으로 분명 그 카테고리에 속하겠지만 여전히 변두리의 음악이다. 현악과 드럼, 베이스를 최소한의 세션으로 활용한 검소한 사운드, 심플한 곡의 구성, 저음의 굵은 보컬 등의 요소가 가난하고 단순하고 고독하고 “처연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정민아의 ‘모던 가야금’ 음악은 민속음악적 색깔을 클럽용 리믹스 가능한 트렌디한 캐릭터로 탈바꿈시키는 게 아니라 본색 그대로 소박하게 다듬어 동시대 음악으로 들리게 한다. 음악적으로 너무 단순하다는 것이 신뢰를 떨어뜨릴 요소가 될 수는 있겠지만 값싼 멜랑콜리함을 진짜 감성인 것처럼 포장한 장식적인 음악들이 대중에게 ‘음악성’의 다른 말로 대체되어 받아들여지는 현실을 생각했을 때 이만큼 진지함과 꾸밈없음과 겸손함을 갖춘 음반을 만난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이다. 지하철에서 악상을 떠올려 한번에 써내려간 <무엇이 되어>나 역시 2∼3시간 만에 완성했다는 <상사몽>은 필청 트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