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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 섬세한 울림의 여자 이야기
정재혁 2007-07-03

여자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요?

핀란드에 가서 주먹밥을 만드는 여자의 손, 현금 수송차에서 3억엔을 강탈한 여자의 마음, 남자들을 콜걸과 연결해주는 전화교환 여자의 음성. 일본영화에서 여자들은 의외의 대목에서 섬세한 울림을 준다. <카모메 식당> <첫사랑>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도 그 감정의 잔향이 진한 작품들. 비밀을 벗고 이야기를 시작한 여자들의 영화 3편을 모아보았다.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ストロベリ- ショットケイクス

감독 야자키 히토시 | 출연 이케와키 지즈루, 나카무라 유코, 나나난 기리코, 나카고시 노리코, 안도 마사노부 | 2006년 | 127분

“행복은 다 팔려버렸군.”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의 여자들은 행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리코(이케와키 지즈루)는 남자친구의 다리를 잡고 늘어졌음에도 실연했고, 아키요(나카무라 유코)는 좋아하는 대학동창 키쿠치(안도 마사노부)에게 건조한 섹스를 요청했으며, 일러스트레이터 도코(나나난 기리코)는 거식증에 시달리고, 치히로(나카고시 노리코)는 섹스만 즐기는 남자친구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나나난 기리코의 동명 만화를 영화로 옮긴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는 도쿄에서 살아가는 네명의 여성을 그린다. 리코와 아키요, 도코와 치히로. 두쌍으로 나뉘는 이야기를 야자키 히토시 감독은 시간의 조각을 이어 붙이듯 연결한다. 네명의 인물은 마치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신’(神)의 모습을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은 도코는 하늘과 씨름 중이다. 훌륭한 OL이 돼서도 욕을 먹는 치히로는 땅을 보고 걷는다. 성희롱하는 점장을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리코는 전화로만 얘기하고(그렇지 않으면 외국인과 이야기하고), 좋아한다 고백도 못하는 아키요는 꼭 술 핑계를 먼저 댄다. 대화가 부족한 일상과 수신이 안 되는 메시지들. 영화는 도쿄와 현재를 배경으로 네개의 포인트를 찍고 서로 다른 현실의 조건들을 술회한다. 딛고 있는 땅이 다르기 때문에 바라보는 곳도, 입으로 내뱉는 말도 다르다. 도코가 그린 신이 길을 잃기 전까지 넷은 만날 기회를 찾지 못한다. 야자키 히토시 감독이 그려낸 인물들의 감정선이 아슬아슬하게 떨린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케와키 지즈루가 리코를 훌륭하게 연기했으며, <청춘☆금속 배트> <사쿠란> 등 최근 영화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안도 마사노부의 연기도 멋지다.

나나난 기리코의 만화

영화에서 도코로 직접 출연하기도 한 나나난 기리코는 사랑과 이별, 성장의 이야기를 평범한 일상에서 끌어내는 인기 만화작가. <블루> <호박과 마요네즈> <워터> 등 주로 독백체의 담담한 어조로 이뤄진 작품이 많고, 여백이 많은 두는 굵은 펜선이 인상적이다. 남자에게 상처입은 여자가 등장한다는 점도 나나난 작품의 공통점. 1993년 <가로>로 데뷔했으며, 영화화한 작품으로는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 외에 <블루>가 있다.

첫사랑 初恋

감독 하나와 유키나리 | 출연 미야자키 아오이, 고이데 게이스케, 미야자키 마사루 | 2006년 | 114분

1968년 실제 있었던 3억엔 강탈사건을 소재로 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고교생 미스즈(미야자키 아오이)는 오빠가 알려준 재즈카페에서 도쿄대생 키시(고이데 게이스케)를 만난다. 랭보의 시집을 읽고 있던 키시에게 호감을 느낀 미스즈는 이후 카페의 멤버들과 어울리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키시는 미스즈에게 현금수송 차량에서 3억엔을 강탈하자는 제안을 하고, 미스즈는 사랑의 감정으로 제안을 받아들인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첫사랑, 완전범죄’라는 일본 개봉 당시 카피처럼 영화는 범죄를 첫사랑의 쓴맛으로 연결한다. 혼란의 시대였던 1960년대에 감행한 여고생의 첫사랑은 범죄가 됐다고.

미야자키 아오이, 고이데 게이스케는 물론 미야자키의 친오빠인 미야자키 마사루까지, 배우들의 연기는 만족할 만하다. 하지만 영화는 인물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 게으르다. 60년대 시대에 대한 묘사도 충분치 않고, 특히 혼자 범죄를 감행하는 미스즈의 사연은 설명이 매우 불충분하다. 성급하게 사랑이라 결론내리기 전에 미스즈란 인물을 충실하게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 출연 고바야시 사토미, 모타이 마사코, 가타기리 하이리 | 2005년 | 102분

똑같이 연어를 좋아한단 이유로 핀란드에서 식당을 하고 있는 일본 여자, 세계지도를 펴놓고 손가락이 가리킨 곳이 핀란드라 일본을 떠난 여자, 휴대폰 멀리 던지기 대회에서 근성을 보고 핀란드를 여행지로 선택한 여자. <카모메 식당>에는 서로 다른 이유로 핀란드에 모인 세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서로 다르다고 해도 그 이유는 대수롭지 않다. 게다가 이들은 만화 주제가의 가사를 맞추며 서로 알게 되고, 도착해야 할 짐이 오지 않아 함께 생활한다. 핀란드 헬싱키의 ‘갈매기 식당’은 이렇게 별거 아닌 이유로 세명의 식구를 갖게 된다.

데뷔작 <요시노 이발관>에서 소년들의 성장담을 그려 베를린국제영화제 아동영화 부문 특별상을 수상한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중년 여성의 행복을 그린다. 핀란드의 단조로운 도시를 배경으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무뚝뚝했던 핀란드 사람들이 역시나 말이 많지 않았던 일본 여성들과 미소를 주고받게 되는 과정은 마치 마술처럼 보인다. 주먹밥의 힘은 물론 삶의 활기까지 찾아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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