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1
[2007 납량 공포 특선] 다리오 아르젠토 회고전 상영작 4편

가장 완벽한 아르젠토의 영화

<수정 깃털의 새> The Bird with Crystal Plumage, 1970년, 98분

올해 다리오 아르젠토 회고전에서 단 한편의 영화를 보아야 한다면, 그 영화는 당연히 <수정 깃털의 새>가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아르젠토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지만 가장 완벽한 아르젠토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너무 잘 만들어서 오히려 덜 아르젠토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르젠토 영화는 적당히 어색하고 지루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수정 깃털의 새>는 날렵하고 잘 짜여졌으며 학살장면 사이의 이야기들도 꽤 재미있는 편이다. 게다가 그는 가장 훌륭한 서스펜스 장면 하나를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멋지게 해치우는 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당시 평론가들이 아르젠토를 ‘이탈리아의 히치콕’이라고 불렀던 것도 이해가 된다. 물론 그는 그 뒤로 별명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긴 했지만. 80년대만 해도 그 별명은 엉뚱한 병에 붙은 상표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줄거리는? 이미 위에서 다 설명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탈리아인 여자친구랑 같이 사는 미국인 작가가 우연히 살인미수 현장을 목격하고 그 뒤로 젊은 여자만 골라 죽이는 연쇄살인범을 추적한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왜 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반복했는데도 <딥 레드>의 추리물은 지겨운데, <수정 깃털의 새>는 그렇지 않은가? 답은 이탈리아 호러 영화계에서 진정한 스타일리스트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거추장스러운 스토리텔링 따위는 벗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 시절의 아르젠토는 스토리의 재미를 그처럼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지는 않다.

아르젠토의 심리묘사는 어떤 맛?

<스탕달 신드롬> The Stendhal Syndrome, 1996년, 120분

<스탕달 신드롬>의 원작은 그라지엘라 마게리니라는 이탈리아 작가의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안나는 훌륭한 예술작품만 보면 정신을 잃는 스탕달 신드롬을 앓는 강간 전문 형사인데, 우연히 우피치 미술관에 들어갔다가 브뤼겔의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을 보고 정신을 잃게 되고 그 무력해진 상태 속에서 연쇄강간범의 희생자가 된다. 그 뒤로 안나는 스탕달 신드롬과 강간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범인을 추적하는데, 전형적인 강간복수극인 것 같던 이야기는 중반 이후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스탕달 신드롬>에는 아르젠토식 연쇄살인 묘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검은 장갑의 살인마도 없고 현란한 가짜 피도 거의 없다. 대신 아르젠토 특유의 현란한 스타일은 온갖 정신적 충격으로 황폐해진 주인공의 내면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집중한다. 만약 그가 이 복잡한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만한 좋은 배우와 연기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을 갖추었다면 이 영화는 90년대 나온 가장 훌륭한 아르젠토 영화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냥 잠시 궤도를 이탈한 원로의 야심적인 실험작 정도로 남은 듯하다.

아르젠토 버전으로 뒤틀린 <오페라의 유령>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the Opera, 1998년, 103분

<오페라의 유령>은 가스통 르루의 유명한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인데, 이를 위해 아르젠토는 로만 폴란스키의 파트너로 유명한 저명한 각본가 제라르 브라크를 공동각색가로 기용하기도 했다. 결과는 어땠냐고?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어떤 영화에서라도 어색한 대사와 연기를 끌어내는 아르젠토의 재능은 전문 작가 브라크의 재능을 능가한다.

영화의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 이야기와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팬텀’은 마스크로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고 있는 괴물이 아니라, 그냥 줄리언 샌즈처럼 생긴 잘생긴 남자이다. 팬텀의 과거사도 원작의 팬텀보다는 오히려 <배트맨2>의 펭귄에 가깝다. 갓난아이가 파리의 하수도에 버려졌는데, 친절한 쥐떼가 그 아기를 키웠고, 그들 사이에서 자란 아기는 훌륭한 가수를 알아보는 예민한 귀와 시청의 쥐잡이들에 대한 증오를 키우게 되었다는 거다.

19세기 파리를 재현한 세트와 촬영은 아름답고 오래간만에 한팀이 된 엔니오 모리코네 역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며 크리스틴 다에를 연기한 아시아 아르젠토는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해도 될 만큼 아름답지만, <오페라의 유령>은 그냥 실패작이다. 영화를 구성하는 코미디, 로맨스, 섹스는 전체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며 그냥 덜컹거릴 뿐이고 그나마 감독의 장기인 피투성이 살인장면도 낯선 설정 탓인지 영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리고 주인공 팬텀을 연기한 줄리언 샌즈는 아마 가장 따분한 아르젠토 괴물일 것이다.

히치콕의 패러디 혹은 아르젠토의 패러디

<히치콕을 좋아하나요?> Do You Like Hitchcock?, 2005년, 93분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 대한 논문을 쓰느라 바쁜 영화학도인 줄리오는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여자 이웃 사샤를 가끔 훔쳐본다. 사샤가 비디오 가게에서 만난 페데리카와 친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샤의 어머니가 살해당하자 줄리오는 사건의 진상을 알아냈다고 생각한다. 사샤와 페데리카는 히치콕의 <열차 안의 이방인>을 보고 교환살인을 계획했던 것이다!

지극히 히치콕적인 스토리에 산더미 같은 히치콕 오마주를 담은 아르젠토의 2005년작 <히치콕을 좋아하나요?>는 앨프리드 히치콕을 추모하기 위해 이탈리아 텔레비전이 계획한 텔레비전영화 연작의 첫 작품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다리오 아르젠토는 한동안 ‘이탈리아의 히치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니, 이 계획의 첫삽을 뜨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짜로 재미있는 건 이 작품이 히치콕의 패러디일 뿐만 아니라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의 패러디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아르젠토 영화를 특징짓는 피투성이 살인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흉기를 휘둘러대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살인자는 여전히 나온다. 단지 이전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살인자가 검은 장갑 대신 흰 장갑을 끼고 있고 멀리서 주인공이 왜 살인범이 그 장면에서 장갑을 끼고 있는지 여자친구에게 친절하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아르젠토 영감이 이렇게 엉큼한 농담을 구사할지 어떻게 알았겠나.

여전히 어색하고 뻣뻣한 영어 대사가 군데군데 신경을 긁긴 하지만 <히치콕을 좋아하나요?>는 여러 가지 면에서 그의 대표작들보다 더 재미있다. 주인공 캐릭터는 생생하게 살아 있고 페이스는 적절하며 유머감각도 풍부하다. <수정 깃털의 새> 이후 거의 죽어 있던 스토리텔러 아르젠토가 은근슬쩍 부활하기라도 한 걸까? 아르젠토식 피투성이 자극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러 온 관객은 비교적 얌전한 사건 전개에 만족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늘 아르젠토가 같은 종류의 지알로 영화만 만들라는 법은 없다. 적어도 <히치콕을 좋아하나요?>는 지난 몇년 동안 아르젠토가 시도해왔던 예술적 일탈 시도 중 가장 눈에 뜨이는 성공작이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