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참 정말 거침없다. TV를 켜면 저녁 무렵의 마봉춘 채널이 아니더라도 거의 하루 종일 CF를 통해 <거침없이 하이킥>의 이씨네 집안 식구들(과 그 주변인물들)을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대략 생각나는 것만 따져봐도 LG카드, 웰스 정수기, 바나나우유, KFC, 빅파이, LG 싸이킹, 팔도비빔면 등의 CF에서 하이킥 식구들을 볼 수 있고, 이중 LG카드와 웰스 정수기, 바나나우유가 여러 편의 멀티광고로 운영되고 있으니 편수로 따지면 무려 15편이다. 게다가 식품부터 전자, 금융권에 이르기까지 그 품목도 각양각색. 다른 활동없이 CF로만 수십억원 번다는 천하의 전지현도, CF만 이어붙여도 하루 일과가 나온다는 광고계 안방마님 이영애도 이런 적은 없었다. 과연 이들의 ‘CF빨’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인기로만 이 현상을 설명하기는 무언가 많이 부족하다. 인기있는 드라마의 주인공들이라서 그렇게 CF를 누비는 것이라면 시청률 50%를 넘었던 SF사극 판타지드라마 <주몽>의 출연자들은 지금쯤 돈방석 위에 앉아 있어야만 한다. <거침없이 하이킥> 군단의 거침없는 CF 점령이 가능한 것은 단연코 캐릭터의 힘이다. <순풍산부인과>에서도 그랬지만 김병욱표 시트콤은 강력한 캐릭터 시트콤을 추구한다. 다른 드라마에는 그럼 캐릭터가 없냐고? 캔디형 신데렐라 캐릭터도 있고 성격 더러운 재벌 캐릭터도 있다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 드라마는 스토리 라인 위에 인물들이 얹혀서 흘러간다. 캐릭터보다 이야기가 먼저라는 소리다. 이에 반해 <거침없이 하이킥>은 캐릭터가 우선하고 이들을 어떤 상황에 놓았을 때 그 캐릭터에 기인해 이야기가 생기는 가족코미디다. 회를 더해갈수록 이들의 캐릭터는 점점 명확해지고 강력해져서 단지 순재+준하, 문희+해미, 민용+민정 등의 인물을 붙여놓는 것만으로 대략의 이야기와 대결구도가 보는 이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이다.
큰맘먹고 돈을 다발로 쏟아부어 시리즈로 몇편씩 만들기 전에는 스토리가 짜여지기 거의 불가능한 국내의 15초 광고에서 그저 모델을 조합하는 것만으로 자연스레 대결구도와 이야기가 생겨난다는 데 광고쟁이들이 이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은 법. 그리하여 정준하가 바보연기 전문 코미디언이었을 당시 ‘딱 한편만!’을 그리도 부르짖을 때는 절대 들어오지 않았던 CF에 어느새 단골로 얼굴을 내밀게 되고, 그저 잇몸이 튼튼해야 한다고 약 광고나 하던 이순재 옹은 각종 젊디 젊은 CF를 호령하며 이달의 CF킹이 되었다. 게다가 나문희 여사는 정말 생애 최초의 CF 나들이를, 그것도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거침없는 CF 질주와는 별도로 이들을 모델로 기용한 일련의 CF들은 이 캐릭터들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15초 광고에서 20분씩 하는 시트콤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 강력한 캐릭터를 가져왔으면 뭔가 한방을 먹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모두가 단순하게 있는 캐릭터에만 기대고 있어 그게 그거인 광고들이 되어버렸다.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 것이 민용과 민정과 교감선생님을 가져다 ‘비벼주세요’라는 기억에 남는 카피를 얹은 팔도비빔면이다. 캐릭터 간의 관계를 비틀면서 캐릭터의 특징을 강화하고 브랜드와 연결해줄 한방의 카피를 찾아냈으니 살짝 얹은 고명이 비빔면의 맛을 제대로 살린 셈이다. 그에 비해 다른 CF들은 다들 ‘거침없이 뭐뭐뭐’라며 <거침없이 하이킥>의 자산에 별다른 아이디어없이 올인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게다가 웰스 정수기는 인물별로 CF를 엄청 많이 만들어놓고는 그 캐릭터를 활용조차 하고 있지 않다. 왜 모델로 기용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그냥 남들이 쓰니까 따라 쓴 건가요? 쳇, 이러면 재밌는 캐릭터도 재미없어져버리잖아요. 뭐든 날로 먹으려 들면 안 되는 법이란 걸 알면서도 왜들 그러실까.
암튼 현재 최고의 CF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거침없이 하이킥> 가족들, 캐릭터를 너무나 잘 소화해낸 그대들의 노고에도 박수를 보내지만 그 전에 캐릭터를 창조해낸 김병욱 PD와 작가들의 공이 큰 만큼 PD와 작가에게 거하게 밥과 술이라도 사도록 권한다. 물론, 벌써 샀을 것이라 짐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