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세상사는 권력관계의 산물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죄다 정치적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사건 사고 자체(이른바, ‘현실’)보다 더욱 정치적인 현실은, ‘현실’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가다. 사회적 해석에 따라 변화와 정지라는, 반대항의 수많은 가능태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조폭 기러기 아빠’를 그린 영화 <우아한 세계>는 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인 계급-교육-성별-부동산의 연동 뇌관이 폭발하지 않고 ‘가족애’로 얼마나 ‘훌륭하게’ 비정치화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듯 재현(re-presentation)은 문제를 은폐, 호도하는 더 중요한 정치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에 대한 언론의 접근방식은 사건 자체만큼이나 절망스럽다. ‘진보’ 언론을 포함, 대부분 매체들이 “저 같은 어리석은 애비가 다시는 없기를”이라는 김 회장의 말을 기사 제목으로 여과없이 보도했다. 이 사건을 부정(父情)이라는 인간 ‘보편’ 문제로 보는 것은, 돈과 연줄(power), 폭력(force)을 동시에 구비하고 또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자본 영주(領主)’의 관점이다. 모든 부모가 자식이 밖에서 맞았다고 해서, 보복하지도 않을뿐더러 김 회장 수준의 보복을 할 만큼 자원을 갖고 있지 않다. 이 사건은 ‘자식 사랑’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두드러진 현상인 폭력의 구입과 판매라는 경제행위가 한국사회 수면 위로 공식화한 것이며, 그러한 경제가 얼마나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은 창녀가 아니라 용병일 것이다. 병사(soldier)의 어원은 금속 화폐를 지칭하는 라틴어(soldes)에서 왔고, 용병(mercenary) 역시 돈(money)의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국가의 전쟁 독점은 근대의 기본 특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지만, 사실, 인류가 국가의 이름으로 군대를 공식 통제하기 시작한 것은 100여년밖에 되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군인은 사병(私兵)으로서 돈 있는 사람에게 고용된 직장인이었다.
냉전구조 해체 이후 지난 18년간 유럽 각국의 국방비는, 절대 액수는 55∼81% 수준으로, 병력은 60% 내외로 급감했다. 세계는 실업 군인과 판로를 잃은 무기로 넘쳐났고, 이는 자연스럽게 국제사회에 민간 군사시장을 형성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군사화된 국가주의는 고비용, 저효율 이데올로기다. 각국은 군대를 교육이나 사설 감옥처럼 시장에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민간 전쟁대행 산업(privatized military industry)이 그것이다. 한국에도 2005년 3월,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Kellogg Brown and Root)의 지사가 설립되었는데, 이 회사는 이라크에서 희생된 고 김선일씨가 근무하던 회사의 원청사이며,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최고경영자로 일한 세계 최대의 전쟁대행주식회사다. 걸프전 때는 100명 중 1명이 용병이었는데, 이라크전에서는 10명 중 1명이었다.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방장관이 주장한 ‘의지의 동맹’이, 실은 ‘거래의 동맹’이었던 셈이다.
자본에 의한 폭력의 사용화(私用化)는 다른 분야의 민영화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굳이 조폭 장르(?)가 아니더라도, 최근 한국영화에 빠지지 않는 ‘캐릭터’는 조폭을 고용한 회사들인데, 이는 남성 청년실업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미 부자들의 사병 고용과 이들의 폭력을 통한 ‘경영’은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잡은 듯하다. 더구나 김승연 회장은 회사 경영도 아닌 집안일에 폭력배를 동원한 것이다. 이 자체로도 무섭고 기가 막힌 일인데, 이를 ‘자식 사랑’ 담론으로 재현하는 언론의 태도는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에 무감각한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돈만 있으면 폭력을 살 수 있고, 폭력을 대행하는 회사가 횡행한다고 생각해보라. 차라리 국가가 군대를 독점해달라는 사회운동이라도 해야 할 시대인가? 한편, 김 회장 같은 계급과 성별이 아닌, 평범한 중산층 엄마가 보복폭행을 사주했다면 어땠을까? ‘아비의 사랑과 고뇌’로 자본이 구매한 폭력을 이해하려는 사회적 시선은, 이른바 ‘치맛바람’을 둘러싼 해석과는 사뭇 다른 태도라는 점에서도 논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