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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지만 말고 즐겨~ 양동근 연출의 <관객모독>
강병진 2007-06-21

6월8일 ~ OPEN RUN | 홍대 벨벳 바나나 클럽

“이 작품은 서두에 불과합니다!” 연극 <관객모독>은 일종의 선언으로 시작한다. 사실 이어지는 내용들이 모두 선언이다. 배우들이 빠르게 내뱉는 대사를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언뜻 들리는 한마디의 대사가 말해주듯 <관객모독>에는 “뭔가 부정하려는 의도”가 있다. “여러분이 일찍이 듣지도 못했던 걸 여기서 듣게 되리란 기대는 마십시오. 또 보지 못하던 걸 보게 되지도 않을 겁니다. 여러분이 극장에서 늘 보고 듣던 것들을 지금 여기선 보지도 듣지도 못할 겁니다.” <관객모독>은 말로는 관객을 모독하고 행동으로는 객석과 무대 사이의 벽을 희롱하면서 기존의 연극과 관객의 관람 태도를 부정한다.

지난 5월17일부터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양동근의 <관객모독>이 홍대에도 새로운 둥지를 마련했다. 동네 분위기에 걸맞게 홍대앞 버전의 무대는 소극장이 아닌 클럽이다. 관객은 클럽에 놀러온 듯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맥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기도 하면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극장에 가면 말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부수자”는 페터 한트케의 원작을 연극화한 작품인 만큼, 이 공연에서 관객은 앉아만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연극의 목적은 바로 그런 관객을 모독하는 것이다.

연출자에서 예술감독으로 위치를 바꾼 기국서는 “시대에 맞는 <관객모독>을 만들기 위해 양동근을 연출자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힙합가수이기도 한 양동근은 기존의 대사를 랩과 비트에 실어놓았다. 또 클럽의 현란한 조명과 함께 디제잉이 끼어들며 대사의 일부분이 무대 뒤편에 걸린 화면에 등장하기도 한다. 덕분에 배우들조차 ‘언어연극’이라고 못박은 <관객모독>의 언어 유희는 더욱 가열찬 양상을 띠게 됐다. 랩으로 내뱉는 대사들이 돌림노래를 부르듯이 이어지고, 관객을 향해 던지는 욕설도 리듬을 탄다. 만담과 악극, 판소리가 난무하는가 하면 아예 대사의 일부분을 영어, 중국어, 독일어, 일본어로 나누어 전달하기도 한다. 특히 이들이 진짜 연극이라며 보여주는 극중극은 <관객모독>이 가진 아이러니한 재미에 충실하다. 입으로는 여전히 기존 연극을 비판하는 대사를 내뱉지만, 이들이 연기하는 상황은 나쁜 고리대금업자와 그에 희생당하는 어느 연인의 비극이다. 어느새 끼어든 연출자는 관객을 위해 더욱 과장된 연기를 주문하거나 아예 관객의 취향을 묻고, 그에 따라 배우들은 난데없이 뮤지컬 <드라큘라>의 한 소절을 부르거나 치마를 올려야만 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돋보이지만 본래의 <관객모독>이 가진 말과 말이 부딪치며 펼치는 언어의 향연은 다소 약한 느낌. 랩의 리듬을 탄 대사들이 비트로만 이해될 뿐 알아듣기 힘든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오히려 대사를 무시하고 무대와 객석을 종횡무진하는 배우들의 모습에 눈길이 사로잡힌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즐거운 공연이다. (문의 : 02-322-19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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