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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무표정이 전하는 전율

강형구 ‘The Gaze: 응시’전 | 2007. 6.5~8.19 | 아라리오 천안

최근 국내 미술시장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랐다. 몇몇 인기 작가는 이미 50여점 이상 작품 주문이 밀린 상태이고, 웬만한 초보 컬렉터가 그런 작가의 작품을 손에 넣으려면 번호표를 들고 네다섯 달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그러면 어떤 그림들이 이런 열기를 부채질하고 있을까? 단연 사실주의 작품들이 선두다. 특히 사진에 버금가는 극사실적 화법이 대표적인 트렌드다.

이번에 대형 개인전을 여는 강형구(53) 작가 역시 그 주인공. 그는 이미 자신의 자화상은 물론,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들의 얼굴을 세밀한 피부조직이나 솜털까지 묘사하기로 유명하다. 크기 또한 압권이다. 2m가 훌쩍 넘는 큰 화면을 꽉 채운 얼굴 이미지와 마주한 순간, 누구나 어김없이 알 수 없는 전율을 경험한다. 무표정한 눈빛으로 관객을 역으로 응시하는 인물의 눈동자에서 무기력한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강형구의 인물들은 강한 흡입력을 지녔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의 제목 ‘The Gaze: 응시’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작가의 에너지원을 열정이라고 한다면, 강형구만큼 열정적인 이도 드물다. 그는 유독 인간의 모습, 특히 얼굴에 집착한다. 그런 점을 작가는 “얼굴은 한 인간이 살아왔거나 살아갈 개인사의 축소판”이라며, “무표정한 얼굴엔 이미 수많은 감성과 감정을 함축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이력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를 사회 저명인사로 만들어준 ‘손기정기념재단 이사장’이란 타이틀 역시 또 다른 열정의 소산이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스포츠계 민족영웅 손기정의 숨은 일화를 발굴하고, 널리 홍보하는 데 수십년을 쏟았다. 그의 집요한 추적과 인내력은 결국 역사 뒤편으로 쓰러졌을 손기정을 양지에 다시 세웠다. 강형구의 화폭에 담긴 무표정한 주인공들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무기력하게 시상대에 선 손기정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강형구의 작품이 발산하는 매력 중에 독보적인 테크닉과 투명함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3m에 육박하는 대형 얼굴을 묘사하는 데 몇 단계의 정밀한 제작단계를 거친다. 처음엔 큰 화면을 바둑판처럼 나누어 얼굴의 윤곽을 잡고, 에어스프레이를 이용해 피부의 매끄러움을 묘사한다. 이어 그 물감이 마르기 전에 면봉이나 붓으로 살갗의 미묘한 잔주름, 솜털, 땀구멍까지 아주 세밀한 부분들을 찾아간다. 놀라운 것은 강형구의 회화가 유화이면서도 수채화 같은 맑은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정교한 주름이나 잔털까지 밀도를 유지하면서 오히려 투명함이 돋보이게 하는 점은, 바로 작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습득한 일필휘지 화법으로 큰 화폭을 빠른 시간에 거침없이 채우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묘사나 색감의 밸런스를 철저히 계산했으면서도 망설임없이 단숨에 그려내는 순발력이야말로 강형구 작품만의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지난 20여년간 작업한 초상화, 캐리커처, 조각상 등 60여점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