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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늘애기야, 니 뒤엔 시에미가 있잖니

베푸는 시어머니와 충실한 조강지처 며느리의 관계 도드라지는 SBS <내 남자의 여자>, MBC <나쁜 여자 착한 여자>

안방극장에 노처녀, 아줌마 등 여성에 관한 담론이 ‘스테디 테마’로 범람하는 가운데 엄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 수직적인 여성 대 여성의 관계가 흥미로운 소주제로 부상했다. SBS 월화극 <내 남자의 여자>, MBC 일일극 <나쁜 여자 착한 여자>, MBC 아침극 <내 곁에 있어> 등이 그것을 엿볼 수 있는 사례. 이들 드라마는 김희애, 배종옥, 최진실, 최명길 등 관록의 중견으로 거듭난 왕년의 꽃미녀 스타들이 극의 요직을 차지한 채 중장년 여성 시청자의 희로애락을 대변하고 있는 목록이기도 하다.

이들 중 배종옥과 최진실은 김수현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나무랄 데 없이 쓸 만한 효부이자 현모양처의 상징이고, 김희애는 그 대척점에 선, 버러지만도 못한 지렁이급의 요망한 불륜녀다. 최명길은 좀 다른 경우로 핏덩이 같은 딸과 아들을 전남편한테 홀랑 맡기고 재혼해 행복하게 살다가 장성한 자식들과 재회해 번민하는 병원장 사모님이다.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되게 능력있고, 돈도 아주 많은 ‘사’자급(의사, 교수) 남성을 파트너로 두고 있어 일단 <쩐의 전쟁>과도 같은 세상살이의 순리에서 자유롭다. 인생의 후반부에 찾아온 정신적인 시련과 갈등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내 남자의 여자>

그런데 모두 가정의 해체 및 재구성과 밀접한 과제를 안고 있어서인지 성인식을 치른 지 지나도 한참 지난 이들 중년 여성의 삶에 가족의 어른인 윗세대의 어르신들이 중요한 요소로 개입하고 있다. 두드러지는 점은 한 세대를 사이에 둔 여성 대 여성의 관계가 ‘고부사랑’, ‘모녀갈등’의 구조를 띠고 있다는 것. 김희애의 엄마 김영애(<내 남자의 여자>), 최명길의 엄마 정혜선(<내 곁에 있어>) 등은 하해와 같은 은혜의 대상인 직계 어머니인데도 딸의 결혼사에 시시콜콜 간섭하고 속물의 가치관을 강제하며 극성맞게 모성애를 표출해 ‘언니’들을 지긋지긋한 기분에 밀어넣는 문제적 인물들이다. 반면,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며 집을 나간 남편 때문에 가슴에 폭탄을 맞은 배종옥과 최진실은 ‘한번 며느리는 영원한 며느리’를 외치며 바람난 아들에게 절연까지 선언하는, 비현실적일 만큼 감동적인 윤리관의 시부모(<내 남자의 여자>의 최정훈-서우림), 혹은 시어머니(<나쁜 여자 착한 여자>의 이효춘) 때문에 기운을 얻고 있다.

최근 <내 남자의 여자>에서 며느리 배종옥한테 애만 보고 살 수 없다며 새 출발을 독려한 한복 곱게 차려입은 시어머니의 조언은 보수성으로 뭉친 외관의 껍질을 뚫고 솟구친 신선한 파격이었다. 게다가 덤으로 근사한 자동차까지 며느리에게 하사한, 물심양면에서 우월한 시부모의 인심은 꾸벅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감동까지 먹였다. 든든한 배경이자 성가신 짐인 가족이라는 존재의 양면성이 전통적인 개념과는 엇갈려 투사되고 있는 모녀와 고부의 신경향이 아닐 수 없다.

한데 드라마들은 여자와 남자가 얽히고설켜 빚어내는 갈등을 다루면서 예나 지금이나 남자 대 남자보다 유독 여자와 여자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에 포커스를 대며 공감과 부러움을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드라마를 통해 다양하고 새로운 인간관계의 스펙트럼을 감상한다는 것은 솔깃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헌신적이고 바른 며느리상을 전제로 깐 고부사랑이나 모녀갈등도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을 설파하는 것마냥 ‘이상한 적대감과 어색한 연대감’ 사이에서 여전히 어정쩡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인상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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