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에서 아시아 영화로는 두 번째로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밀양>의 전도연, 송강호, 이창동 감독이 5월30일 오후 귀국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도연을 비롯한 세 주인공의 표정이 그 어느 때보다 밝았는데, 지상파 뉴스 기자들까지 대거 따라붙는 언론의 취재 경쟁이 ‘살벌’했던 건 한국영화에서 오랜만의 풍경이었다.
-전도연씨는 한류 스타를 뛰어넘어 바로 월드 스타가 됐는데, 칸으로 떠나기 전에 시나리오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제 해외합작 작품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면. =(전도연)월드 스타요? 글쎄. 공항 들어서면서 처음 들은 말이 ‘월드 스타 전도연’인데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아요. 앞으로가 중요한 거지. 칸에서 받은 상으로 월드 스타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고 앞으로 월드 스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고요. (웃음) 합작영화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언어적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도 해야 할 일이 많고요. 제의가 온다면 시나리오 보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홍콩 방송사 기자입니다. 칸 가기 전에 심사위원인 장만옥이랑 특징이 비슷해 주연상을 받을지 모른다고 한국 언론이 많이 얘기했는데 어땠는지. 그리고 홍콩이나 중국에서 합작 제의가 들어온다면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지. =(전도연)심사위원 중에 장만옥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기뻤어요. 원래 워낙 좋아했거든요. 칸에 가기 전에 감독님과 얘기한 게 부담을 지우고 충분히 영화제를 즐기자고 해서 맘을 비우고 갔어요. 해외에서 출연 제의가 온다면 시나리오부터 꼼꼼히 보고, 좋은 기회라면 할 수도 있겠죠.
-현재 위기라고 하는 한국영화의 상황을 송강호씨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송강호)감독님에게 할 질문이 바뀐 듯하군요. (웃음) 칸에서 프랑스 언론과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우리 영화계의 과도기적 상황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더군요. 개인적 소견으로 보면, 산업적으로 위축되고 염려되는 면이 부상하고 있지만 꼭 거쳐야 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거품이 있었다면 이런 과정을 통해 정리되고 내실있고 건강한 산업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과도기라기보다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비관적이라기보다 희망적으로 봅니다.
-감독님은 문소리에 이어 전도연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기를 이끌어냈습니다. 여자배우에게서 연기를 이끌어내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지요? 전도연씨가 촬영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다고 할 정도였다는데. =(이창동)남녀 배우를 특별히 구분하지는 않는데요. (웃음) 특별히 하는 게 없어서 그걸 배우들이 힘들어해요. 원래 갖고 있는 내면의 감정이 인물의 에너지로, 바깥으로 표출될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정도, 그걸 기다리는 정도죠. 너무 기다려서 중간에 그만두고 싶기도 하고 그랬을 겁니다.
-전도연씨는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점에서 해보고 싶었던 건가요? 칸에서 관객의 한명으로 다시 봤을 때 마음에 드는 장면은 어떤 장면이었나요? =(전도연)처음에는 사실 자신없어 거절했는데 감독님이 여러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속에서 신애의 감정이나 겪는 상황이 담겨 있었어요. 시나리오만으로는 그게 다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느껴지지도 않았고요. 감독님 말씀을 듣고 다시 읽으니 신애의 마음이나 상황이 이해됐어요. 그리고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고통의 끝이 어디인지. 칸에서 관객이 제 연기를 봤다고 생각하지 않고 신애의 감정을 같이 느꼈다고 생각했어요. 반신반의했는데 고스란히 느껴주더라고요. 그런 게 더 감동스러웠어요.
-전도연씨가 어떤 배우인지 감독님과 송강호씨가 말씀해주시길. =(이창동)여러분이 너무 잘 아는 배우라 따로 규정하기 어렵지만 같이 작업했던 사람으로서 보면, 어떤 배우라고 말하기 어려운, 정해진 그릇에 담기 어려운 배우예요. 그 점 때문에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고. 흔히 배우를 보고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말하곤 하는데 전 그거 믿지 않아요. 자기 얼굴 하나를 갖고 있는 것뿐이죠. 그런데 전도연씨는 진폭이 큰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기 때문에 뭐라 규정하기 어려워요. 제가 도연씨를 괴롭혔다면, 관객도 예상하지 못한, 나도 예상하지 못한, 나아가 도연씨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감정을 요구한 거죠. 그게 순간순간 화면에 담겨 있어요. 그래서 예상하거나 규정지을 수 없는 배우입니다. =(송강호)감독님 말씀에 많은 부분 동의합니다. 도연씨는 오래도록 알고 지내왔지만 함께 연기해보기는 처음인데, 지금까지 보여준 이미지로만 알고 있었으나 그 고정관념의 에너지를 훨씬 뛰어넘는 무서운 에너지를 갖고 있더라고요. 너무 강해서 겁이 날 정도로. (웃음) 촬영장에서 항상 코너에 몰렸어요.
-감독님은 특별히 문화관광부 장관 일을 하셨는데 그 시절 이후 지금의 한국영화 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창동)지금 위기에 대한 진단 문제는 많은 분들이 하고 있고, 산업적 제도적 환경적 문제의 돌파구를 찾고 있어 특별히 할 말이 별로 없는데, 하나 첨가한다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좀더 도전적이고 모험적이고 실험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대규모 배급구조 방식에서 그런 영화로 관객과 만나기는 더 어렵겠지만 그럴수록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영화를 만들어야 관객의 사랑을 받아낼 것이고 주류 상업영화에도 에너지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젊은 영화인들이 더 분발해야 하고, 관객은 그 도전의식을 도와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