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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엘리엇 스미스를 위하여

<New Moon> 엘리엇 스미스/ EMI 발매

단골 바가 있다. 일주일에 두어번 들르는, 종종 혼자 가서 술 한잔 앞에 두고 책을 읽어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술집 말이다, 라는 말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물론, 엘리엇 스미스에 한해서라면. 몇년 전, 그러니까 2003년 가을 그는 자기 심장에 칼을 박아 넣었다. 이 뉴스가 충격적이었던 것은 (다양한 의미에서) 90년대를 상징하던 젊은 음악가가 자살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마지막 순간을 위해 선택한 것이 ‘스테이크용 칼’이었다는 점 때문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아마도) 가장 대중적인 곡일 그의 <Between the Bars>를 들으면, 그래서 항상 별로 예리하지도 않았을 낡은 레스토랑 칼이 떠오른다. 그것은 다소 우습기도 하면서 소름 끼치는 상상이다. 어쨌든, 그의 신작이 발매되었다.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이 앨범은 여전히 잘 팔린다. 1995년과 1997년 사이, 데뷔앨범 <Elliott Smith>와 가장 성공적이었던 앨범 <Either/Or> 사이 어디쯤에서 그가 만들어둔 곡들이다. 여전히 그는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무려 두장의 시디에 담긴 이 ‘미공개 트랙들’은 음과 음 사이에 다소 거친 질감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선, 그저 엘리엇 스미스답다. 그가 자살한 뒤 얼마 되지 않은 2004년에 발매된 ‘유작 음반’ <From A Basement On The Hill>의 직설적이고 단단한 사운드가 오히려 엘리엇 스미스다운 사운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앨범이었다면 이번 앨범에 수록된 <High Times>와 <Going Nowhere>와 같은 곡들은 그가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의 사운드를 재현한다. <New Disaster>와 <Fear City> 같은 곡이 <Either/Or>의 감수성을 자극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오히려 이 앨범은 사운드를 말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자극하는 앨범이다. 왜일까. 왜 그럴까.

영화로 치자면 벤 스틸러의 1994년 영화 <청춘 스케치>(와 에단 호크, 혹은 위노나 라이더)처럼, 상징으로서의 ‘엘리엇 스미스’라는 이름은 기억을 환기시키는 힘이 있다. 리사 롭이 어쿠스틱 기타를 어깨에 메고 <Stay>를 부르며 환히 웃던 뮤직비디오를 힘들게 구해보던 그 시절, 그러니까 10여년 전의 그 시간을 엘리엇 스미스도 마찬가지로 환기시킨다. 이를테면 그는 90년대의 어떤 상징, 나약하고 반-남성주의이고 신념을 갖기 전에 패배부터 배워버린 세대에 속한 ‘루저’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죽어버린 엘리엇 스미스의 음반을 홍보하는 맥락들이 불편하기도 하다(물론 그 불편함을 과하게 드러내는 것은 더 불편한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엘리엇 스미스는 이제 ‘죽어서 더 큰 스타가 된 스타들’의 별자리로 승천했고 우리는 그의 더블음반을 만지작거리며 그의 죽음을 애도한다, 혹은 기념한다. 어느 ‘바의 사이’에서. 그런데 한장의 음반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 아니,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엘리엇 스미스에 한해서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더이상 이 작은 별에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