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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양의 자력(磁力)

기교 넘치는 연기로 캐릭터를 생생하게 살리는 배우 박신양

<쩐의 전쟁>

시청률이 15%만 넘겨도 “아, 이제 됐다” 하며 시청자의 무심한 시선을 뛰어넘어 ‘서바이벌’했음을 안도하는 요즘의 드라마 세상에서 방송 2주 만에 30%대를 위협하는 상승곡선을 그린 SBS 수목 드라마 <쩐의 전쟁>(이향희 극본, 장태유 연출)은 일단 신바람의 휘파람을 불어도 괜찮을 것이다. 아직 초반부를 관통 중인 이 드라마를 두고 성공요인을 두루두루 거론하는 것은 성급하겠지만 박신양이라는 이상한 ‘자석’은 짚고 넘어가야 할 듯싶다. ‘박신양의, 박신양에 의한, 박신양을 위한’ 드라마라고 땅땅땅 도장을 내려치는 것은 ‘오버’다 싶어도 한 연기자의 존재감이 처음부터 이토록 강력하게 작품 전반을 장악한 경우는 드물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채업과 ‘쩐’ 얘기를 정면에서 다룬 최초의 사례이고, 동명의 만화을 원작으로 삼은 이 드라마에서 박신양은 ‘금나라’라는 놀림 많이 받았을 이름을 가졌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는 서울대학교 출신의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사채업계 대모의 손녀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사채빚에 쪼들려 자살하고 집안이 풍비박산나면서 그는 번지점프하듯 추락한다. 길거리에서 자고 쓰레기통을 뒤져 허기를 때우는 거지가 된 그는 잠시 그의 드라마 속 전직이 뚱뚱한 넥타이를 트레이드마크로 삼은 자동차회사의 한기주 사장이었음을 상기한 이들에게 낙차 큰 충격을 선사한다.

그것도 잠시, 영웅 탄생담의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업계의 전설적인 인물과 만나 역전의 기회를 맞는다. 빛나는 기지로 사채업계의 대부 독고철(신구) 선생의 시험에 통과하고 ‘참 잘 했어요’라는 도장 박힌 칭찬의 선물까지 받는 그는 이제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 돈으로 맞짱을 뜨려고 사채업계의 기린아로 변신한다. “사랑은 없다가도 생기지만 돈은 없다가는 절대 생기지 않는다”며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이는 우리네한테 팍팍 공감의 비수도 날리면서 말이다.

단 몇회에 이 같은 숨가쁜 과정을 체화한 박신양은 돈에 울고 웃는 인간세상에서 피해자, 가해자, 관찰자 등으로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금나라의 극적인 변화상을 시종 박신양표 연기로 갈무리한다. 금나라 안에 박신양은 분명 있다. ‘파리의 연인’ 한기주가 아니라 금나라이기 때문에 그가 버럭 화를 낼 때 그 찢어질 듯한 입을 덜 벌리거나 불분명한 ‘ㄴ’ 받침 발음을 또렷하게 발성하지는 않는 것이다. 가령 안경을 올리는 동작 하나에도 순간의 방점을 찍는 박신양 특유의 표정과 말투는 일상의 자연스러움을 굴복시키는 매력있는 ‘한 스푼 더’의 임팩트가 돼 새로운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낯가림을 해제하고 힘있게 시선을 극중으로 빨아들여버리는 가이드 역을 담당한다.

만화에서 큰 틀만 가져왔지 크게 신세진 대목은 없다는 제작진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 드라마는 동시대인의 관심사를 시의적절하게 자극하는 현실밀착형 색채를 띠고 있다. 그러나 선명한 캐릭터, 대결구도 등에는 만화적인 요소와 판타지성도 다분히 있다. 영화 <귀여운 여인>에서 초반 설정을 따온 <파리의 연인>이 황당하지 않게 꿈같은 로맨스를 전파했듯 <쩐의 전쟁>도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매력을 지녔다. 박신양의 힘은 돈의 영웅이 되든, 사랑의 영웅이 되든, 만화적인 것의 거리감을 현실적인 것으로 땅에 밀착시키는 대목에서 특히 만발하는 듯 보인다. 그것은 설사 말이 안 되는 것일지라도 100% 믿음을 갖고 그 배역을 가루가 될 때까지 꼭꼭 씹어 소화한 뒤 자신감있게 토해내는 데서 비롯한 자력(磁力)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배역의 옷을 입은 박신양은 생생하게 현실적이고, 인간 박신양은 다른 배우에 비해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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