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릿속은 똥으로 가득 차 있다. 온갖 불결한 상상들이 바다 위의 오물처럼 둥둥 떠다닌다. 대뇌피질에 수세식 변기라도 있다면 레버를 누르고 싶다. 깨끗한 놈들만 남고 죄다 쓸려 내려가도록.
위악이다. 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한때 그런 죄의식에 휩싸이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순백의 영혼처럼 착한 척했지만, 늘 내면에선 다른 것을 갈구했다. 딜레마였다. 내 속에 든 생각과 욕망들을 어느 선까지 행동으로 옮겨야 할지….
물론 지금은 닳고 닳아 문제없다. 나만 닳은 게 아니다. 친구들도 닳았고 동료들도 닳았고 선배들도 닳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걸로 고민하면 또라이 취급받는다. 적당히 할 말 안 할 말 골라하면서, 숨기면서 산다.
얼마 전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둔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다. 아이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아 학교를 찾았다고 한다. 그는 초면의 어색함을 능란하게 깼다고 자랑했다. “선생님, 되게 젊어 보이세요. 몇 살이세요?” “몇살 같은데요?” “흠…, 30대 중반?” “어머, 40대 초반인데….” “전혀 그렇게 안 보이세요.” “젊다는 소리를 많이 듣긴 하죠. 호호호.” 사실 그 여선생님의 얼굴은 40대 후반 가까이 보였다고 했다. 가증스럽지만 미워할 수 없는 위선이다.
맘에 있는 말만 하고 살 수는 없다. 의례적인 수사는 필요하다. 물론 틈날 때마다 하면 스트레스가 된다. 특히 공적인 자리에 오른 사람들은 그 잔을 피할 수 없다. 10여년간 큰 노동조합의 감투를 썼던 어느 선배는 이렇게 엄살을 떨곤 했다. “운동하면서 관성적으로 내뱉던 낯간지러운 말들이 이젠 진저리가 나.” 그 말이 자신에겐 억압으로 다가올지라도 남에게 큰 해를 끼칠 일은 없다. 넓은 마음으로 손해보고 산다고 치라면 무리한 요구가 될까. 개인적으로는 맘에 없는 말을 앞으로 많이, 그것도 번지르르하게 하고 싶다. 그렇지 못해 정이 없다는 타박까지 들어온 처지다. 여러 사람에게 실없는 기쁨을 주며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정치인들이야말로 ‘맘에 없는 말’을 밥먹듯 한다. 욕할 것은 없다. 정작 문제는 ‘맘에 든 말’이다. 속에 도사린 무서운(또는 무식한) 언어들, 그걸 생각없이 툭툭 내뱉을 때다. 이런 경우다. “워싱턴에 갔었는데 깜둥이들이 우글우글하더라. 무서워서 저녁에는 호텔에서 나오지도 못했는데 그 무서운 곳에서 어떻게 사냐.”(이효선 광명시장, 5월17일 워싱턴협의회 소속 24명과 함께한 공식 오찬에서) “낙태는 기본적으로 반대인데, 불가피한 경우가 있다. 아이가 세상에 불구로 태어난다든지, 이런 불가피한 낙태는 용납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이명박 전 서울시장, 5월12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너무 솔직하면 안 된다. 정치인만 그런 게 아니다. 또 다른 에피소드 하나. 장애우가 일부 동에 밀집한 서울의 어느 중산층 아파트촌에서 한 초등학교 학부모들이 모였다. 그 학교에는 장애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조금 많았다. 모인 이들은 모두 비장애아의 어머니들이었다. 다 멀쩡하게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이었다. 그들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나왔다. “10분만 더 걸어가면 다른 초등학교가 있잖아. 거긴 장애아들이 한명도 없다는데.” “우리 애들도 그 학교로 배정받아야 했어. 어떻게 옮길 방법이 없나?” “나도 그것 때문에 요즘 애 학교 보낼 맛이 안 나.” 자연스럽게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나누더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섬뜩했다. 머릿속에 똥이 들었다고 그걸 아무 데나 마구 흘린다면…. 그러니까 정치인이건 아니건 ‘맘에 없는 말’이 미덕이 되는 시대다.
객쩍은 논리로 ‘위선’을 예찬하고 말았다. 이 글을 마무리할 즈음에 최근 유명을 달리한 어느 노작가의 유언을 접하다 가슴이 찡했다. 이 글의 결론과는 정반대였는데, 그래서 더더욱 그랬다. 오랫동안 맘에 꽁꽁 얼려둔 말이었던 거다. 그는 10대부터 큰 병을 앓으며 평생 혼자 외롭게 살았던 분이다. 사회의 거울이 될 만한 삶을 살았고 거기에 걸맞은 유언을 했는데, 마지막에 이런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다음 생엔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그래서 스물다섯살이 되면 스물두셋쯤 되는 여자를 사랑하고 싶다. 떨지 않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건강하게 태어나지 못한다면 다시 태어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