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보러 가고야 말았다. 한국 영화계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참아보려고 노력했으나 정확히 3주 갔다. 작심3주.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암전 속에서 코믹스 장면들에 어렴풋이 불이 들어올 때는 신음 소리마저 터져 나왔다. 차라리 진작 볼 걸. 꾹꾹 참는 동안 흥분만 더 커져서 거의 미친 개처럼 열광하면서 봤다. 모야! 너무 재밌잖아! 누가 재미없다고 했어! 7천원 내고 뭘 더 바라! 도둑놈 심보야!

미안하다. 오버했다. 다시 한국 영화계의 미래를 걱정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생각해보건대 그래서 문제인 거다. 아무리 부천필하모닉의 수준이 높아도 베를린필과 부천필의 공연 관람료는 비교가 안 된다. 실력보다 규모가 문제인 거다. 당연히 대학로 소극장 공연과 <퀴담> 공연 가격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3천억원짜리 영화도 30억원짜리 영화도 모두 7천원(하긴 요새는 9천원도 받는다더라)을 받으니 한국영화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영화 경쟁력있으니 시장논리로 맞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시장논리란 같은 돈을 내고 500억원어치 보여주는 50억원짜리 영화가 아니라 3천억원 쏟아 부어서 3천억원어치 보여주는 영화를 선택하는 거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영화 경쟁력 운운할 수가 있나. 이참에 공연처럼 제작비를 반영한 티켓 가격을 영화에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스파이더 맨>이 7만원 하면 안 보겠다. 5만원이라도 안 보겠다. 2만원이라면 흠, 좀더 생각해보겠다.

미안하다. 또 오버했다. <스파이더맨 3>를 보고 나서 베스트 3장면과 워스트 3장면을 꼽아봤다. <베스트> 1. 피터가 블랙 스파이더 유니폼을 속에 입고 앞머리를 흩뜨린 채 거리를 걷는 장면. 이 장면은 2편에서 평범하게 살기로 맘먹은 피터가 빨간 쫄쫄이를 벗어던지고 힘차게 거리를 걷던 장면과 대구를 이룬다. 3편에서 피터는 ‘건방진’ 영웅으로 살기로 결심하는데 강북필로 앞머리를 내린 채 지나가는 여인들에게 사랑의 쌍권총을 날리며 오버를 떤다. 여기서 압권은 그 모습을 본 여자들의 반응 ‘쟤, 왜 저러니?’. 시리즈 전편을 통해 가장 웃기며 샘 레이미의 ‘B자 정신’이 아름답게 승화한 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역쉬 영웅도 알고보면 우리 같은 찌질이였다구!

2. ‘검은’ 피터 파커가 동료 에디를 벽에 밀어붙이며 그가 만든 합성사진을 폭로하는 장면. 고뇌 많고(엑스맨) 심성 고우며(슈퍼맨), 소심한(스파이더 맨) 영웅에 질렸다. 이렇게 터프한 영웅이 보고 싶었다구! 검은 옷을 입었다 뿐이지 이 장면에서 스파이더 맨은 단호하게 정의를 구현한다. 개발에 땀나게 떨어지고 부딪히는 시민만 쫓아다닐 게 아니라 이렇게 질나쁜 사기꾼을 징벌하는 것, 그것이 영웅의 진짜 면모 아니던가.

3. 뉴고블린과 스파이더 맨의 뒷골목 추격전. 설명해서 뭐하랴. 입만 아프다.

<워스트> 1. 블랙 스파이더 맨을 이기고 빨간 스파이더 맨이 귀환하는 장면. 순전히 이 장면 때문에 이런 글을 쓰게 됐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대통령 귀환을 연상시키는 빨간 내복의 귀환 뒤에 스크린을 뒤덮은 성조기는 뭐꼬? 그 밑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은 뭔데? 지금 수십층 꼭대기에서 책상이며 의자며 사무실 집기들과 철근 등 건축자재들이 마구 쏟아지는데 스파이더 맨 보고 박수 치다가 머리통에 책상 벼락이라도 맞으라는 건가? 영웅의 귀환에 열광하다가 콘크리트에 깔려 죽는 시민이라도 보고 싶다는 건가? 이건 액션도 아니고, 개그도 아니다.

2. 샌드맨이 자기의 억울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산화하는 장면. 리모컨이 있으면 포워딩하고 싶은 그 지루하고 상투적인 대화는 둘째치고 아저씨, 전세계를 집어삼키겠다는 야심도 아니고 겨우 애 병원비 구하려고 그런 짓 하신 거예요? 진작 스파이더 맨을 불러다놓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시지, 그럼 피터가 알바 세개 더 뛰어서라도 병원비 구했을 거 아녜요. 애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악당이 등장하면 정부는 악당과 영웅이 한판 붙기 전에 이들 앞에 협상 테이블을 먼저 만들 것을 촉구하는 바다.

3. 에디가 교회에서 하나님께 피터를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장면. 장난해? 장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