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음악
사라졌던 시간의 음악적 성과

<The Boy With No Name> 트래비스 | 소니BMG 발매

그로부터 4년이다. 세 번째 앨범 <12 Memories>를 발표한 게 2003년, 같은 해에 발표된 뮤즈의 <Absolution>에 밀린 것도 억울한데 2005년에는 콜드플레이가 <X&Y>로 그야말로 세계를 뒤흔들어놓았다. 크리스 마틴은 공공연히 “우리는 트래비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떠들고 다니기도 했으니 이쯤 되면 트래비스의 보컬 프랜시스 힐리가 이렇게 말했을 것 같기도 하다. “젠장!”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음악신도 많이 변했다. 프란츠 페르디난드로 대표되는 개러지록 리바이벌은 하드 파이와 악틱 몽키스로 이어지며 영국 음악신을 들썩거렸고, 전기기타 따위는 무시하며 피아노로 만든 훅을 후려갈기며 킨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트래비스라는 이름은 “아하, 그런 밴드가 있었지, 90년대에 말야”라는 식으로 잊혀지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4년 만에 발표한 트래비스의 네 번째 앨범 <The Boy With No Name>은 한동안 이런저런 일들로 바빴던, 따라서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던 트래비스가 선택한 비장의 카드 같은 느낌이다. 마치 ‘1990년대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을 붙이고 있는 것 같은 이 앨범은 이들이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그러니까 1999년에 발표되어 트래비스를 세계적인 밴드로 각인한 <The Man Who>의 아름다움을 재현한다. 첫곡 <3 Times and You Lose>는 <Writing to Reach You>를 그대로 연상시키며 앨범을 연다. 첫 싱글 커트된 <Closer>의 촘촘한 사운드의 결은 점입가경으로 펼쳐지는 브릿팝의 방법론에 충실한데, 이어지는 <Big Chair>는 개러지 사운드의 영향도 언뜻언뜻 보인다. 만돌린 사운드와 캐스터네츠, 탬버린 등이 난무하는 <Battleships>는 놀랍게도 BMX밴디츠(혹은 한국 밴드 줄리아하트)와 닿아 스웨디시 팝을 떠올리게까지 만든다. (그런 게 있다면) 트래비스적인 사운드를 가장 충실히 재현하는 것 같은 <Eyes Wide Open>과 <Out in Space>, 그리고 애절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One Night>와 철지난(이를테면, 90년대의) 기타 팝처럼 들리는 <Under The Moonlight>와 <New Amsterdam>은 트래비스가 가장 성공했던 시절의 음악, 8년 전의 바로 그때를 돌아보고 있음을 밝혀낸다.

하지만 이 음반은 단지 90년대의 캐치프레이즈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수록곡들이 발산하는 노스텔지어가 조금 복잡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앨범의 사운드는 그동안 트래비스가 사라졌던 시간의 음악적 성과들을 어떻게든 담으려는 노력의 결과다. 그런 시도들이 일련의 사운드로 결합해 난삽하지 않으면서도 일관된 쾌락을 전달하는 것은 대단한 성과다. 세련되면서도 편안하다. 직관적이면서도 낭만적이다. 이 음반이 2007년 최고의 브릿팝 앨범이 되기에는 대결해야 할 상대가 많겠지만, 그리고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4년이라는 시간을 보상받을 만한 앨범인 것은 사실이다. 밴드에게나 팬들에게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