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2일 안방극장에서 퇴장한 MBC 월화 미니시리즈 <히트>(김영현·박상연 극본, 유철용 연출)는 언제부터인가 유행하기 시작한 ‘한국형’이라는 수식어가 지긋지긋한 정(情)처럼 빼도 박도 못하는 참 ‘거시기’한 것임을 알려준 드라마였다.
방송 전 ‘한국판 <CSI>’라는, 제작진도 도리질을 치며 난감해한 잘못된 정보 때문인지 모처럼 수사 드라마의 장르에 도전한 이 ‘한드’에 ‘미드’의 틀거지를 대입해 비교해보려고 시도한 이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아직 멀었는가보다’라는 체념의 반응도 나왔을 법하다.
<히트>는 분명 “와” 하는 감탄사를 불러낼 만큼 촘촘한 구성으로 지적인 쾌감을 안겨주는 작품도, 홍콩에까지 건너가 역동적인 추격신을 담아 왔음에도 반드르르한 블록버스터 액션물의 영상을 자랑한 작품도 아니다. 14년 전 문제의 연쇄살인범을 쫓는 큰 줄거리는 막판에 가서야 숨가쁘게 탄력이 붙어 공포스릴러 장르의 긴장감을 반짝 자랑했다. 드라마가 감질나게 사건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가운데 ‘뛰는’ 작가 위에 ‘나는’ 시청자들은 자발적인 추리력을 동원한 각종 시나리오 놀이로 여백을 메우는 재미있는 풍경도 벌어졌다.
차수경(고현정) 팀장이 찌푸렸던 미간을 펴고 냉정을 찾기까지, ‘히트’ 팀원들의 갈등과 개인사가 해결되고 봉합돼 다 같이 주먹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감격적인(?) 대목을 만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물론 그 뒤에도 우리의 히트팀은 사람이 하나둘 죽어나가는,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인데도 다 같이 모여 회의하느라, 살인사건 현장에서 우두커니 서 있느라, 커피 한잔 마시며 옥상 데이트를 즐기느라 참 자주 숨을 돌리곤 했다. ‘한국형’ 수사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동시에 ‘시(時) 테크’와는 상관없는 나름의 인간적인 여유, 혹은 빈틈을 벙벙하게 노출했다.
그럼에도 <히트>를 떠나보내며 가슴 한쪽이 짠해지는 것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주인공 차수경 경위만 해도, 매사 감정적이고 공과 사도 잘 구분하지 못해 가끔 짜증으로 맞불을 놓게 만들었다. 그런데 연쇄살인범의 등 뒤에서 총을 겨눈 채 10분 동안 얼어버려 범인을 놓치고, 결국 사랑하는 오빠도 저세상에 보낸 14년 전 경찰 초년병 시절의 상처와 그것과 지독하게도 오래 투쟁하는 그의 구질구질함이 어느 순간 애틋해져버렸다. 차수경 경위는 남자투성이 팀을 호령하는 여성의 무기가 남자보다 똑똑하고 냉정하며 강인한 데서 나오는 게 아님을, 히트 팀원들은 서로서로 ‘쪽팔린’ 부분도 들키면서 인간 대 인간으로 상대의 상처와 인생을 이해했을 때 살아갈 맛이 나는 팀워크가 빚어진다는 점도 새삼 알려줬다. 그래서인지 이 드라마를 보면서 느리고 단순한 그들의 행동에 속이 터지다가도 막간의 ‘뚱’하면서도 온기있는 농담 주고 받기에 이내 마음이 녹아버리는 기이한 변덕을 경험했다.
입에 꼭꼭 씹어 소화하기에는 모호한 차수경 역을 고현정이 한국 드라마사에 남을 인상적인 여형사 캐릭터로 소화했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X파일>의 스컬리나 <CSI 라스베가스>의 캐서린처럼 비현실적일 만큼 유능하고 빈틈없는 ‘미드’의 여성들보다 근사하지 않을지언정, 발을 헛디뎠다가 그것을 딛고 잘 살아보려 몸부림을 치며 때로는 사랑 앞에서 볼도 발그레 물들이는 그냥 여자이자 인간으로 시청자의 옆구리에서 호흡한 것만은 맞아 보인다.
<히트>는 치밀하지 않되 끈끈했다. 아무래도 이 죽일 놈의 ‘한국형’ 정의 속성이 질긴 구석은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