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이디 아민의 모습(바벳 슈로더의 <장군 이디 아민 다다> 중).
영국에서 스코틀랜드를 구해내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으로 불리길 꿈꿨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검은 대륙의 히틀러’로 이름 붙여진 남자가 있다. 1971년에 쿠데타로 우간다의 실권을 잡은 이후 수십만명의 죽음을 초래한 공포정치를 펼친 결과, 1978년부터 2003년까지 망명자로 살다 죽은 이디 아민은 20세기 중반의 가장 논쟁적인 인물로 남았다. 우간다 국내와 바깥에서 그를 바라보는 상반된 정서는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그는 안으로 대다수 국민의 치를 떨게 만든 정치가였으나 해외토픽과 외국 가십잡지로 옮겨가면 우스갯감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민이 죽은 지금,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우간다인의 몫으로 돌린다 하더라도, 선정적인 기사에 물들어 결국엔 서구가 의도한 ‘야만적이고 부패한 아프리카’라는 편견에 동조했던 사람들에겐 비뚤어진 시각의 수정이라는 숙제가 남아 있다. 요즘 세대에 어쩌면 낯선 인물일 아민이 다시 주목받게 된 데는 그를 다룬 영화 <라스트 킹>과 주연배우 포레스트 휘태커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의 힘이 크다.
모험과 즐거움을 좇아 해외파견 의료진으로 우간다에 도착한 풋내기 의사가 우연히 아민의 주치의이자 측근이 되고, 어설픈 공명심과 명성의 달콤함에 취해 백인 꼭두각시 노릇을 맡는다. 그러나 클럽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미 앤드 바비 맥기>가 역설적으로 말하듯, 쉽게 맺은 관계는 곧 한계를 드러내 스코틀랜드 청년이 위기에 처한다는 이야기다. <라스트 킹>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건 휘태커의 명연에 대한 상찬인데, 기실 흥분을 표하기보다 조용히 분노를 내비치는 형이었던 아민의 대외용 모습에 비해 휘태커의 거창한 연기에는 과장된 부분이 없지 않다. 그 외에도 다큐멘터리 작가의 첫 극영화인 만큼 덜컹대는 드라마와 사실보다 더 화려한 설정들이 현실감을 상쇄하는데, 이러한 지적은 <라스트 킹>이 마지막 클로즈업 장면과 그 외에 많은 부분을 참조하고 빌려온 바벳 슈로더의 <장군 이디 아민 다다>와의 불가피한 비교에서 기인한다.
1974년에 발표된 이 다큐멘터리는 아민이 극중 음악을 맡는 등 직접 제작에 개입한 작품인데도 당시에 그를 착취한 삼류영화나 보도와 달리 결코 선정주의에 빠지지 않았고, 그를 대하는 공포와 경멸의 눈동자를 빌려 한 독재자가 잘못 이끈 자유, 개혁, 평화, 민주주의의 이면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장군 이디 아민 다다>에서 아민이 자주 내뱉는 말은 ‘진실’이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 물론 알 수 없다. 다만, 우간다가 식민지였을 때 영국에 의해 살인병기로 길러졌고, 독립 이후 좌파 지도자가 눈에 거슬린 영국과 제국주의자들이 쿠데타의 리더로 옹립했으며, 서방과 유대인에 대항해 목소리를 낼 즈음엔 노리개로 전락한, 그래서 20세기의 축소판에 다름 아닌 한 남자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다. 그것은 2차대전 뒤 독립과 군사독재라는 비슷한 길을 밟았던 우리에게 거울 혹은 진실을 반영하는 그 무엇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라스트 킹>을 보면서, 타인의 ‘저개발의 기억’을 단지 ‘미개의 기억’으로 치부했던 1970년대의 우를 지금 다시 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영화의 격에 어울리지 않게 개봉되지 못한 채 홈비디오로 직행한 것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라스트 킹> DVD의 만듦새가 좋다. 평균 이상의 화질과 음질에 더해, 역사적 사실과 영화 제작 과정을 오가며 말을 풀어내느라 부단히 노력하는 감독의 음성해설, 영화의 오리지널 오프닝이 포함된 7개의 삭제장면(12분), 메이킹 필름과 이디 아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겸한 ‘이디 아민의 기록’(29분), ‘휘태커가 말하는 이디 아민’(6분), ‘주인공 캐스팅 과정’(9분) 등 영화의 이해에 도움이 될 성싶은 부록들이 다수 제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