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 시리즈의 스티브 클로브스
HeSTORY
<해리 포터> 전 시리즈를 각색(<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제외)해온 스티브 클로브스에 대한 진실 하나. 그는 각색 제안을 받을 때까지 이 책의 존재조차 몰랐다.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예견된 흥행 파워에 어울리지 않게도, 그는 지독하게 ‘안 팔리는’ 작가였다. 24살의 데뷔작으로 숀 펜, 니콜라스 케이지가 주연한 <젊음의 초상>(1984), 형제 피아니스트와 여가수의 기묘한 긴장감을 나른한 재즈 음악에 녹여낸 <사랑의 행로>(1989), 텍사스의 자판기 수리공과 아버지의 어긋난 관계를 그리스 비극의 형식에 담은 <악몽>(1993) 모두, 평단은 적당히 반응했고 대중은 철저히 외면했다. 이후 7년 동안 절필한 그는 처음 도전한 소설 <원더 보이즈> 각색으로 비로소 전환점을 맞는다. 젊은 나이에 성공을 맛본 뒤 매너리즘에 빠진 소설가(마이클 더글러스)와 열정에 찬 젊은 이상주의자(토비 맥과이어)의 심리, 그리고 이들의 모호한 관계를 절묘하게 스크린에 옮겨 오스카와 골든글로브 후보에 오른 것. 곧 그는 워너브러더스로부터 몇편의 각색을 제안받았고, 그중 한편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선택함으로써 전세계 가장 폭넓은 연령층에 사랑받는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터줏대감 작가가 됐다.
TALENT
<나 홀로 집에>의 크리스 콜럼버스, <이투마마>의 알폰소 쿠아론, <모나리자 스마일>의 마이크 뉴웰 등, 동질감이라곤 거의 없는 감독들이 J. K. 롤링의 영국산 마법세계를 스쳐간 동안 각본만은 변함없이 스티브 클로브스가 맡아왔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제작자 데이비드 헤이먼과 클로브스는 롤링 원작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충성을 이유로 꼽는다. “내가 가장 기쁘게 하고 싶었던 사람은 콜럼버스도 쿠아론도 뉴웰도 아닌, 원작자 J. K. 롤링이었다.” 전작에서 인물들의 어둡고 우울한 내면을 포착했던 그는 롤링의 원작에 깔린 어두운 정서에 빠져들었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대등한 진지함으로 그들의 세계를 대하는 흔치 않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원작에 충실하다 해도 각색자는 방대한 원작의 세계에서 취사선택의 묘를 발휘할 수밖에 없다. 클로브스의 각색은 해리, 해그리드, 루핀 교수 등 캐릭터들에 내재한 아웃사이더적 감성에 방점을 찍는다. 헤이먼이 클로브스에게서 높이 사는 점도 해리가 느끼는 가족의 공백과 성장의 그늘을 작품 전체에 팽팽히 유지하는 기술이다. “그는 멜랑콜리를 다룰 줄 아는 작가다. 작은 영화를 주로 했지만 그 안에 펼쳐지는 감정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그는 센티멘털리즘에 빠지지 않고 편안하게 감정을 다룰 줄 안다.” 자녀들을 생각하며 각색에 임하는 클로브스는 어린이 팬들이 판타지 이미지보다 더 좋아하는 건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아이들의 현실적 고민이라고 확신한다. “아이들은 벅빅이나 무서운 디멘토보다, 헤르미온느가 ‘내 뒤통수가 이렇게 생겼단 말야?’ 하고 기막혀하는 장면을 더 재밌어한다.”
MEMORABLE LINES
해리: 선생님, 해고되신 거예요? 루핀 교수: 아니야. 내가 그만둔 거란다. 해리: 그만두셨다고요? 왜요? 루핀 교수: 누군가가 내 비밀을 흘린 것 같더구나. 내일쯤이면 학부모들이 보낸 항의 편지가 도착할 거다. 부모들은 나 같은 사람이 자기 아이들을 가르치는 걸 원치 않을 테니까…. 해리: 하지만 덤블도어 교장선생님이 도와주실…. 루핀 교수: 그분은 이미 날 위해 무리를 많이 하셨단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은 말이야… 이젠 이런 일엔 익숙해져 있다, 고 해두자.
감정의 흐름을 다루는 클로브스의 장기는 <해리 포터> 시리즈 중에서도 <해리 포터: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가장 강력하게 발휘된다. 클로브스는 보름이면 늑대인간으로 변신하는 루핀 교수를 <…아즈카반의 죄수>의 핵심 어른 캐릭터로 꼽는다. 슬픈 사연을 감추고 있는 루핀 교수는 점점 심적 궁지에 몰려가는 해리의 편에서 진심어린 위로를 건넨다. 두 사람은 호그와트의 아웃사이더로서 유대감을 나누지만 이들의 잔잔한 감정적 교감은 곧 닥쳐올 이별로 더 쓰라린 추억을 남긴다. 특히 루핀 교수가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는 장면은 <해리 포터> 시리즈가 판타지의 외피를 쓴 현실적인 성장담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자신이 늑대인간이라는 비밀이 누설되자 그는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나기 전에 스스로 사퇴서를 낸다. 힘없이 물러나는 그의 쓸쓸한 뒷모습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더욱 용납치 못하는 학교 공간의 폐쇄성을 일깨운다. 그를 보내는 해리는 망연한 표정밖에 지을 수 없다. 어른들의 규칙과 자신의 무력감을 새삼 깨닫는 이 장면에서 클로브스는 관객의 씁쓸한 성장의 추억을 조용히 흔들어 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