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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대작 시나리오 작가] 데이빗 S. 고이어

어둠의 영웅을 사랑한 남자

<블레이드> 시리즈, <배트맨 비긴즈>의 데이비드 S. 고이어

HeSTORY

데이비드 S. 고이어가 처음 썼던 각본은 90년에 나온 장 클로드 반담 주연의 <지옥의 반담>이다. 저예산인 건 둘째치고 그의 상상력과 어울리지 않았다. 고이어는 몇편을 지나 <크로우2: 천사의 도시>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그 다음 작품 <다크 시티>의 각본을 위해 연출자 알렉스 프로야스가 그를 데려가면서 진정한 발판을 얻었다. 말하자면 고이어의 출세작이 탄생한 셈이다. 좀더 확실하게 그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유명 작가 대열로 올려놓은 것은 <블레이드>다. 고이어는 3편까지 만들어진 <블레이드> 시리즈를 통해 프로듀서와 감독으로도 입지를 넓혀간다(하지만 각본가로만 쓸 만하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고이어는 원작에 없던 블레이드의 스승 위슬러를 창조하여 영화에 넣었고, 그게 도리어 원작 시리즈에 반영되는 등의 영향력도 발휘했다. 그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를 함께하더니 지금 다시 한번 놀란과 함께 후속편 <더 다크 나이트>를 준비 중이다. <엑스맨>의 스핀오프라 할 만한 <매그니토>도 그의 신작 중 하나다. 코믹북 영웅을 주로 다뤄온 그의 평생의 프로젝트는 언젠가 앨런 무어의 “<와치맨>을 하는 것”이다.

TALENT

데이비드 S. 고이어가 사랑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코믹북이고, 또 하나는 ‘다크’(dark)라는 표현이다. 대학을 다니며 어렵게 자신을 키우던 어머니가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동안 어린 그를 맡겨 놓은 곳은 다름 아니라 코믹북 서점이었다. 그래서 그 인연으로 어린 시절부터 코믹북을 즐겨 보게 됐고 그 안의 영웅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좋아하게 됐다는 것이 그의 코믹북 사랑에 관한 설화다. “내 생각에 코믹북은 이미 새로운 장르가 됐어요. 웨스턴이나 뮤지컬 같은 거죠. 코믹북은 그리스 신화에 대한 나만의 버전 같은 거죠.” 이건 그가 지금까지 선택해온 <배트맨> <블레이드> 같은 소재들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것들에 대해 쓸 때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그가 사랑한 ‘다크’란? “나는 어두운(dark) 이야기에 많이 끌려요”라고 고이어는 습관처럼 고백한다. 그는 어두운 고담(<배트맨> 시리즈의 배경도시)의 시민이라 불릴 만하다. 혹은 우울하고 어두운 도시와 세계에 매혹되어 있는 그의 각본 속 영웅들은 마치 하계에서 이제 막 올라온 인물들처럼 그려진다. 영웅이되 반영웅이고 인간이되 그림자 같은 그런 주인공들. 그 이야기를 SF 장르 안으로 밀어넣어 판타지를 만드는 게 그의 특기다. 그럴수록 그의 ‘나만의 그리스 신화 버전’은 어둡고 기괴해진다. 고이어의 각본에서 가장 중요한 낱말 하나만 뽑으라면 아마 ‘다크’가 될 것이다. 이제 그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각본계의 ‘다크맨’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MEMORABLE LINES

집사: 그런데 왜 하필 박쥐인가요? 브루스 웨인: 내 박쥐 공포증을 악당들도 맛봐야 하니까요. -<배트맨 비긴즈>

“고통받는 캐릭터를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초현실적 경험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고이어는 말한 적이 있는데 이 설명은 <배트맨 비긴즈>에도 어울린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두려움’이 아닐는지. 유년 시절 발을 헛디뎌 박쥐가 들끓는 우물에 빠진 뒤로 박쥐 공포증에 걸려 ‘고통받는’ 브루스 웨인. 그가 악당에게 부모를 여의고 정의를 배우기 위해 아시아의 어느 계곡을 헤맨 다음, 마침내 두려움을 이기고 그 두려움의 상징이 되어 악당을 제압하는 전사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배트맨 비긴즈>다. 절반은 그 고행의 수련과정이고, 절반은 고담시로 돌아와 악당들을 제압하는 그의 활약상이다. 겁 많고 ‘평범한’ 부잣집 도령 브루스 웨인이 검은 세계의 강철 같은 영웅 배트맨이 되는 태초의 과정이 영화에는 있다. 유머러스하고 앙징맞기까지 한 <배트맨>의 다른 시리즈와 확연하게 차이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가 배트맨으로 돌아왔을 때 여자친구 레이첼이 미처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누구세요?”라고 묻자 그는 심오하게 말한다. “당신처럼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런 대의명분보다 더 중요한 명대사는 바로 “내 박쥐 공포증을 악당들도 맛봐야 한다”는 브루스 웨인의 이 퉁명스런 한마디다. 왜냐하면 전사가 되기 위해 브루스 웨인은 그의 스승 핸리 듀카드에게 이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넌 두려움을 없애려 세상을 떠돌았지. 하지만 문제는 적이 아니야. 진짜 두려움은 네 안에 있어. 넌 자신을 두려워 해. 이제 자신과 맞서야 해. 때가 됐다. 공포를 삼켜버려. 맞서라고. 두려움을 극복하려면 너 스스로 두려움이 돼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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