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I> 뉴욕편에 귀여운 요원, 대니가 궁지에 몰리는 에피소드가 있다. 한때 좀 놀았던 과거 탓에 어이없게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것이다. 문제의 DNA 분석결과를 받아든 대니, 냉큼 맥 반장에게 달려간다. “지금부터 자네가 하는 모든 말은 진술이 되네.” 대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의 냉철한 맥 반장, 바로 수사모드로 돌입하신다. 울상이 된 대니, 이렇게 맞받아친다. “반장님, 전 지금 상사가 아니라 친구가 필요해요.” 그래,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다. 사람이 누군가를 찾을 때는, 반드시 이성적인 충고가 필요해서만은 아니다. 사실 자신의 문제점이 무엇이고, 어떻게 위기에 대처해야 하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정말 절실한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될지라도) 어쩌면 무조건 내 편이 돼줄 사람, 같이 흥분하고 걱정해줄 누군가가 아닐지. 혈육이든, 친구든, 그냥 아는 사람이든. 이를테면 <내 남자의 여자>의 은수(하유미) 같은.
스펙터클 불륜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에서, 나는 남편을 친구에게 빼앗긴 지수(배종옥)가 마냥 불행하다고만은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막막한 것은 화영(김희애) 쪽이다. 그 차이를 결정짓는 것은 그들에게 ‘절대적인 편’이 있는가, 없는가다. 화영에겐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가족이 있지만, 지수에겐 ‘튀겨 죽일 년놈들’을 위해 언제라도 기름솥을 데워줄 언니가 있다. 동생 일이라면 열일 젖혀두고 달려오는 열혈 언니가 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런 유별난 자매들이 주변에 종종 있었다. 우주의 중심이 마치 동생과 언니뿐인 것처럼 행동하는. 여전히 이런 견고한 사이에 적응하기 어렵고, 선호하지도 않지만, 그리고 언니나 동생이 없는 나로선 영영 불가능한 일일 테지만, 가끔씩 마음이 흔들리는 계절이 오면 내게도 이런 ‘절대적인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주변에 이성적인 맥 반장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은수 언니는 어디에도 없다. 정말이지, 내게도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돈 많은 형부도 있었으면 좋겠다 -_-). 그러고 보니, 언젠가 절박한 문제를 들고 찾아와 위로를 구했던 후배에게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안해, 그때 나는 100% 맥 반장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