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스타 갤럭티카> 한국 Fox 채널 월~금 밤 11:50
자신이 SF 장르의 광적인 팬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스타트랙>을 흠모하는 이른바 ‘트레키’(Trekkie)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소 엉성한 TV용 세트 안에서 주로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전개되는 이야기와 영화에 비해서 너무나도 부족해 보이는 특수효과가 어우러져, SF 장르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스타워즈>에는 범접도 못할 수준이라고 치부해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드디어 한국에서도 방영하기 시작한 미드 <배틀스타 갤럭티카>(이하 <배틀스타>)는 외견상으로만 보면 일부에서 그렇게 취급받는 <스타트랙>의 ‘짝퉁’ 정도로 보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설정과 이야기 전개 방식에서 외견상 유사성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맹이를 찬찬히 보면 <배틀스타>는 <스타워즈>와 더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번에 방영되는 <배틀스타>가 동명 원작 미드를 기초로 만들어졌는데, 그 원작이 처음 방송을 탄 시점이 바로 <스타워즈> 신드롬으로 미국이 한번 들썩였던 1978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타워즈>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해 이름을 날리고 최근엔 <스파이더 맨>에서 특수효과를 담당한 거물 존 딕스트라가 <스타워즈> 다음 작품으로 참여한 것이 원작 <배틀스타>이기도 했다.
그러나 <스타워즈>와 달리 원작 <배틀스타>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편당 1백만달러(약 9억원) 정도의, 당시로서는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되었지만, 그 대부분이 시청자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특수효과에 투입되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나마 그 정도 예산으로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특수촬영 장면을 찍을 수 없어,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이미 사용했던 장면들을 다시 쓰면서 시청자는 차츰 <배틀스타>에 흥미를 잃어갔다. 그래서 결국 원작 <배틀스타>는 시즌1을 끝으로 브라운관에서 사라졌고, 1980년에 리메이크작이 제작되기도 했지만 그것도 전혀 이목을 끌지 못한 채 조용히 사라져갔다.
그렇게 실패한 줄만 알았던 <배틀스타>가 2003년 이후 부활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던 데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선 인물은 원작 <배틀스타>에서 주인공 중 하나인 리 아다마 대위를 연기한 리처드 해치라는 배우다. 그는 원작 <배틀스타>가 종영한 이후에도 <배틀스타>의 독특한 설정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성에 미련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배틀스타>의 부활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배틀스타>에 대한 여러 책들을 출간했고, 1999년에는 <Battlestar Galactica: The Second Coming>이라는 단편영화를 만들기도 했을 정도. 판권을 가진 유니버설의 계열사 Sci-fi 채널을 찾아가 리메이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마침내 이루어낸 것도 바로 그다.
그가 그렇게 <배틀스타>의 부활을 위해 뛰어다니게 된 것은 90년대 중반 우연히 여자친구의 권유로 <스타트랙> 컨벤션에 참석했다가 수많은 <배틀스타> 팬들을 만난 경험 때문이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왜 여기 왔을까 생각하며 걸어 들어갔는데, 내 사인을 받기 위해 10대부터 30대까지 많은 사람들이 한 블록 가까이나 줄을 서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었다. 그 뒤 팬들과 지속적인 교감을 쌓아가며 그는 ‘일생의 프로젝트’로 <배틀스타>의 리메이크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눈물겨운 과정을 거쳐 2003년 리메이크된 <배틀스타>에 대한 팬들의 초기 반응이 아주 차가웠다는 것이다. <와이어드>가 당시 상황을 ‘Fans Battle TV Over Galactica’라는 제목의 기사로 다루었을 정도. 그러나 파일럿 형식으로 방영된 5부작 미니시리즈 이후 얼마 전 종영한 시즌3까지 방영되는 과정에서 <배틀스타>는 SF의 새로운 장르를 연 걸작으로 평가받는 중이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지난 5월초 선정한 과거 25년간의 최고 SF 작품에 <매트릭스> 1편에 이어 2위에 <배틀스타>를 선정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배틀스타> 시리즈에 톰 자렉이라는 정치인 역할로 출연하는 리처드 해치가 많은 SF 마니아들한테서 공개적인 칭송을 받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