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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보는 공포영화] <헨젤과 그레텔>의 프로덕션 과정
박혜명 2007-05-24

모두가 아는 동화에서 제목을 땄지만 영화 <헨젤과 그레텔>은 내용상 동화와 그리 연관이 깊지는 않다. 가난으로 인해 새엄마에게 버림받는 두 남매의 슬픈 동화에서 영화가 차용한 것이 있다면 ‘부모에게 사랑받지 못한 아이들’이라는 결핍의 정서다. 동화 속에는 마녀의 과자집이 배고픈 남매를 유혹하고 영화에서는 아이들의 예쁜 집이 어른들을 유혹한다. 이제 한국영화의 미술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된 류성희 미술감독(<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달콤한 인생> <괴물>)은 “외로움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되 그림에서나 볼 법한, 완벽한 행복을 담고 있는 집”으로부터 구상을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의 집은 내부 세트와 외부 세트가 각각 다른 곳에 지어졌는데,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보이는 1, 2층 내부 세트는 부산에, 말끔한 외부 세트는 초국적적인 느낌의 원시림이 존재하는 제주도에 지어졌다. 류성희 감독은 제주도에서 발견한 숲이 “근원적인 공포와 미움에서 빠져나가지 못한 채 머무르는 존재들”을 보여주기에 적합했다고 말한다. 유려하고 울창하기보다 무질서한 처녀지의 느낌이 헌팅을 나갔던 모든 스탭들을 반하게 했다고.

컨셉_겨울에 보는 판타지호러

<헨젤과 그레텔>의 전체적인 미술 컨셉은 ‘겨울에 보는 판타지호러’다. 이는 여름으로 내정돼 있던 개봉시기를 겨울로 늦추면서 새롭게 잡힌 마케팅 컨셉하고도 통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동화 제목을 차용한 영화에 썩 적합해 보이는 비주얼 전략이기도 하다. “비주얼은 기본적으로 우아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류 감독은 “어쨌든 과자집을 모티브로 하기 때문에 집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현실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느낌을 상기시켜주고자” 했고 이에 벽지를 전략적으로 사용했다. 토끼를 메인 모티브로 삼은 집안의 모든 벽지는 직접 도안, 제작한 것들. 그림체는 미국 동화작가 모리스 센닥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곰돌이, 로봇 등 아이들 세계에 존재할 법한 소재를 넣으면서 가까이서 살피면 기괴한 느낌을 주도록 의도했다. 곰의 귀가 떨어져나가 있다든지 토끼가 피를 묻혔다든지. 성인 취향의 영화였으면 미술적으로 훨씬 강렬하고, 예쁘기보다 불쾌하게 만들어갔겠지만 아이들이 볼 만한 영화를 만들자는 것이 감독님의 기본 생각이었기 때문에 어른의 관점과 아이의 시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 엽기성과 기괴함이 순수한 동화 속 판타지 안에 배어들었을 때 빚어지는 부자연스러움이 이 영화의 ‘과자집’의 의도라고 류 감독은 설명한다.

기본 컬러_원색들의 인공적인 배치

<헨젤과 그레텔>은 기본적으로 색의 삼원색에서 비롯된 다양한 컬러를 가리지 않고 쓴다. 색의 종류 대신에 의미를 둔 것은 색의 배치. 요즘의 세련된 방식대로라면 비슷한 계열들끼리 모아놓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대비 효과가 중요하다. “시각적 강렬함을 모티브로 삼아 색의 배치를 강렬하게 의도했다”는 것이 류성희 미술감독의 설명. 잘 어울리지 않는 청색과 녹색, 뚜렷이 구분되는 핑크색과 파란색을 같은 공간 안에서 무차별 뒤섞는 식이다. 이런 식의 색의 사용은 찬란해 보이는 만큼 부자연스럽기도 하다. “플라스틱한 느낌이랄까. 어딘가 가짜 같고 인공적인, 오버했다는 느낌을 가져오고 싶었다.”

소품_취사선택과 배치의 묘미 극대화

“실무적인 관점에서 인형들을 구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고풍스런 느낌을 더해주는 빈티지 인형들은 몇십, 몇백만원을 부르는 것이 보통. 그런 고가 물품으로만 세트를 채우는 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50만원을 들고 삼성동 코엑스에 가도” 건져온 인형들이 죄다 평범해서 눈알을 망가뜨리거나 입을 찢거나 하는 식으로 리폼했다. 다량이 필요한 병정인형들은 나무를 깎아 제작했고, 2층 복도에 걸어둔 염소, 말 따위의 부조인형은 해외 사이트에서 저렴한 값에 사들여 역시 리폼한 것들. 종이죽을 뒤에 붙여 무게감을 주고 도색 작업을 새로 한 결과, 저렴한 할로윈 가면들이 고급스러운 사기인형으로 변신했다.

장난감의 취사선택 및 리폼만큼 중요한 것은 배치의 묘미다. “어릴 때 꾸는 악몽들 중에 가장 흔한 건 내 방에 있는 인형들에게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나 하는 거다. 자고 일어나보니 어딘가 방이 달라진 듯한 인상.” 류 감독은 소품 세팅에 그런 아이디어를 활용해서 이 집안 장난감들의 세팅을 수시로 바꾸었다고 한다.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인물들이 무언가 도모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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