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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보는 공포영화] <헨젤과 그레텔>
박혜명 2007-05-24

시놉시스

20대 중반인 은수(천정명)는 어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급히 고향으로 향한다. 혼전 임신을 한 여자친구 때문에 한편으로 마음이 불편한 채였던 은수는 한적한 고속도로 위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깊은 숲에 처박히게 된 은수는 한 소녀의 도움으로 예쁜 집에 머물게 된다. ‘즐거운 아이들의 집’이라는 간판이 붙은 그 집에는 친절해 뵈는 부모와 세 남매가 살고 있다. 그들의 도움으로 안정을 찾은 은수는 속히 다시 길을 떠나려고 하나 미심쩍인 분위기로 가득한 이들 가족이 은수를 놓아주지 않는다.

여보세요? 네? 어디쯤이시라고요? 아, 지금 숲에 계신다고요. 그럼 거의 다 오신 건데…. 맞아요, 그 숲에서 길을 찾기가 쉽진 않으실 거예요. 나무들이 어수선하게 많이 뒤엉켜 있죠. 사람 손을 거의 탄 적이 없는 야생 숲이랍니다. 토끼 잡는 사냥꾼도 오간 적이 없어요. 인적은커녕 새 한 마리 울지 않죠. 걸을수록 길이 아닌 어딘가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시라면 그게 맞게 오고 계신 거예요. 나무들이 죄다 화난 얼굴을 한 것 같다고요? 괜찮아요. 저도 숲에 나가면 가끔씩 그런 걸 보는데, 그저 나무들이 비밀이 많아서 그런 것뿐이에요. 사람을 해치진 않아요. 그럼요! 나무들도 비밀이 있죠. 우리 애들이 그랬는걸요. 애들이 그렇다면 그런 거예요. 아이들의 세계에서 가능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어요. 발자국을 발견하시게 되면 무조건 그걸 따라오세요. 아이 발자국 하나, 어른 발자국 하나, 이렇게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란히 난 길을 따라오시면 되는 거랍니다.

드디어 찾아오셨군요! 사진기자님이랑 두분이 오신 건가요? 아유, 정말 고생하셨어요. 여기가 우리 삼남매, 그리고 이쪽이 우리 남편이에요. 모두들 표정이 해맑죠? 우리 다섯 식구가 다같이 인사하는 장면을 찍으면 좋겠다고요? 그럼요, 얼마든지. 여기 현관에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까요? 찍으시는 김에 이 팻말도 좀 잘 나오게 해주시겠어요? ‘즐거운 아이들의 집’이라고 이게 우리집의 별명이랍니다. 우리 애들이 붙여놓은 거죠 뭐, 호호호. 근데 정원은 안 나오게 해주세요. 가꾼 지가 좀 오래돼서, 구석구석 많이 지저분해요. 애들 장난감들도 안 치웠고, 나무 줄기와 덩쿨들이 외벽을 타고 자라서 꼭 버려진 집 같잖아요. 어맛, 그쪽 덤불은 뒤지시면 안 돼요. 볼 게 뭐가 있다고 그러세요!

1층 거실과 식당, 놀이방

어머, 감탄하시긴. 알고 취재오셨잖아요. 이번 기사가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집보다도 예쁜 우리집’이라는 특집으로 나간다고 들었는데, 아닌가요? 가구며 물건들이 전부 사랑스럽죠? 노란색 소파, 핑크색 벽, 하늘색 천장, 붉은 벽난로, 반짝이는 모빌 장식, 여기저기 쌓아둔 인형들까지 이 널찍한 거실에 들여놓은 물건들 중에 어느 것 하나 고민하지 않은 것이 없죠.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집이라니, 과찬이 아니라 사실이네요. 예쁘고 착한 삼남매를 위해 우리 부부가 정성을 다했으니 그 정도 칭찬은 들어도 되겠죠. 사실 기자님뿐 아니라 평소에도 애들보다 어른들이 이 집을 더 좋아하세요. 너무나 행복하고 사랑이 가득해 보이는 집이라고요. 본인들이 여기 살고 싶다고. 기자님, 그러시면 저 대신 여기서 사시겠…, 아뇨 이건 농담이고, 이쪽으로 와보세요. 거실 한면을 꽉 채운 푸른 벽지가 정말 근사하죠? 밤이 깊은 겨울 숲에 분홍빛 토끼들이 뛰노는 컨셉이에요. 모리스 센닥이라고, 외국에 유명한 동화삽화가 겸 작가가 있는데, 칼데콧상도 여러 번 수상한 인물이랍니다. 그분의 화풍을 따서 주문제작한 거예요. 수입벽지 중에도 이런 건 없죠. 우리 애들 취향이 좀 독특해요. 숲이 음습하다니요. 기자님은 아직 애가 없어서 모르시나본데, 요즘 애들은 옛날 애들하고 달라요. 집안의 색깔들이 너무 원색적이고 인공적인가요? 애들이 좋아하는 대로 꾸몄다니까요. 애들을 위해서 부모가 못할 게 있으면 안 되는 거예요.

두분 다 저녁 못 드셨을 테니 식당으로 가실까요. 그쪽은 놀이방이에요. 애들 셋이 지금 놀고 있어요. 네에, 장난감 천국이죠. 비싼 것들, 희귀한 것들 잔뜩이랍니다. 두분은 일단 여기에서 과자며 케이크며 맘껏 드셔요. 제가 만든 건 아니고 우리 애들이… 호호, 솜씨가 좋은 건지 능력이 좋은 건지. 다만 자기들 좋은 대로 만들어서 색깔들이 좀 그렇죠? 쿠키는 하늘색, 주스는 핑크색, 케이크는 녹색. 원, 음식이 장난감도 아니고…, 그렇게 음식답게 좀 만들어보라고 말했건만 애들이 듣질 않네요, 호호호호…. 괜찮아요! 우리 부부는 늘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식사를 즐긴답니다. 부족하면 더 달라고 하세요. 잔뜩 있어요. 우리 애들이 식욕이 좀 왕성해요. 먹는 데 예민하죠. 잠시라도 배고픈 걸 못 참더라고요. 과자를 그렇게 많이 먹으면 입맛이 없어서 밥을 못 먹는다고요? 기자님이 뭘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 부모라면 애들이 원하는 걸 해주는 게 우선이에요. 우리 애들이 욕심쟁이에 심술꾼들이라뇨, 말조심하세요…!

푸른색 수프가 다 끓어가네요. 좀 드릴까요? 냄새랑 모양은 거시기해도 맛은 있는데. 이런, 벌써 음식에 질리시면 어떡해요.

복도

계단참이 어두우니까 조심하세요. 2층 조명도 신경을 쓴다고 쓰는데 이상하게 1층보다 늘 어둡네요. 근데 그 편이 어울리기는 해요. 1층은 거실과 식당, 놀이방이 있어서 손님들을 반기기에 적합하다면 2층은 애들 방과 우리 부부방, 손님방만 있는 사적인 공간이니까요. 머물다 갈 게 아니면 외부인들에게 잘 공개하지 않죠. 물론 대부분의 손님들은 1층을 보고 나면 이 집에 반해서 머물고 가기로 마음을 바꿔요. 그러면 이렇게 2층을 안내하는 거죠. 복도가 길고 좁아서 더 어둠침침한 느낌이실 거예요. 벽에 걸린 염소 장식물요?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동물이랍니다. 기자님 거기 조심하세요! 발이요 발! 토끼 인형 넘어지겠어요. 사기로 만든 거라 자칫 깨져요. 집안 곳곳에 있으니까 앞으로 더 조심해주세요. 사실 요놈들이요, 새벽에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면 빛을 이상하게 받아서 괴물처럼 보이고 그래요… 어른인 저도 끔찍해서 원, 오호호호…. 어머낫! 이 구석에 또 풀이 자랐네. 뽑아도 뽑아도 죽질 않아 대체. 이 집이 가끔씩 이래요. 숲에 있는 풀들이 쑥쑥 자라서 벽을 파고드네요. 나름 자연주의 컨셉이긴 한데…, 자아 자아, 두분 피곤하실 테니 얼른 남은 방을 돌아보죠.

2층 아이들 방과 손님방

우리 애들 방이 가장 궁금하셨죠? 바로 여기랍니다. 이보다 예쁜 아이들 방을 보신 적이 있나요? 보라색 벽지는 토끼 문양을 컨셉으로 직접 제작했고요, 여기 애들 키만한 큰 곰인형은 1천만원짜리랍니다. 인형 색깔 닳으니까 프레시 터뜨리지 말고 찍으세요. 계속 말씀드리지만 전부 애들 취향대로 마련한 거예요. 이 집의 주인은 아이들이지 우리 부모가 아니니까요. 기자님은 또 벽지 트집이시군요. 피 얼룩이라뇨. 그건 진짜 피가 아니라 토끼가 입고 있는 스커트에 피 얼룩이 그려진 거예요. 개성있잖아요. 토끼가 인형 쥐고 있는 생김이 어디가 어때서요. 곰인형에 눈깔 없는 게 뭐가 이상한데요? 제 눈엔 다 멀쩡해 보이는데 뭐가 자꾸 기분 나쁘시다는 거예요. 정 그러면 애들한테 물어보세요. 저는 몰라요. 이건 전부 애들이 꾸민 거라고요! 저는 손도 대지 않았어요!

말이 난 김에 하나만 주의드리죠. 오늘 여기서 주무시고 가실 거죠? 웬만하면 방에 들어가서 나오지 마세요. 한밤중에 누가 천장 위를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도 두분 다 얌전히 방에 처박혀 계세요. 아시겠어요? 만에 하나 방에서 나오더라도 복도 끝방에 들어가서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그림책엔 손도 대지 마세요. 우리 애들은 자기 물건에 손대는 걸 아주 싫어해요. 그 방은 다락방으로도 통하는데 거기도 웬만하면 안 가시는 게 좋아요. 인간 대 인간으로 드리는 마지막 충고입니다.

자. 이쪽이 댁들 방이군요. 두분이 한방 쓰셔도 상관없으시죠? 맘에 안 들면 한분이 복도 끝방 가서 주무시든가. 어쨌거나 이따 잘 때는 침대 머리맡의 장난감들 조심하세요. 자고 있으면 얘들이 내려와서 목 조르고 칼질합니다 호호호호…. 어머, 농담 한번 해본 건데 얼굴 하얗게 질리신 것 봐. 겁나세요? 하긴, 우리 인간들이 자는 동안 장난감들이 살아서 돌아다니는 건 사실이니까. 내일 아침에는 이 녀석들도 이 모양대로 안 있을걸요. 애들이나 하는 소리라고요? 어머, 애들이 하는 말은 전부 진짜예요. <토이 스토리>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데, 모르셨구나. 특히 이 집에서는 어른들 소원은 안 이뤄져도 애들 소원은 바로바로 이뤄진다고요.

근데요, 기자님들. 실은 우리 부부가 급한 볼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오늘 밤에 애들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고요…, 여튼 금방 돌아올게요. 그때까지만 부탁드려요. 별로 어렵지 않아요. 그냥 우리 애들 예뻐해주시고, 애들 말 잘 듣는 부모 노릇만 하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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