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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세계로 들어가는 26가지 열쇠 ①
김도훈 2007-05-22

<마리 앙투아네트>는 찬반이 격렬한 영화다. 로튼토마토닷컴의 평은 신선도 53%와 썩은내 47%로 정확하게 양분된 상태. “이 영화는 역사 수업이 아니라 통역된 역사”라는 소피아 코폴라의 대담함과 “아름답도다! 아름답도다!”라고 탄식한 전기작가 안토니아 프레이저의 흥분에도 불구하고, 어쨌거나 절반의 관객은 “소피아 코폴라의 성인버전 바비인형 놀이에 불과하다”는 비평가들의 몸서리에 동참할지도 모르겠다. 야채와 메인디시 없이 달달한 디저트만으로 만찬을 차릴 수 있다고 믿는 코플라의 세 번째 영화에 동의하거나 말거나. 이 기절하게 화려한 ‘로스트 인 베르사유’는 잡학사전을 통해 ‘통역’을 좀 할 필요가 좀 있는 세계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사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것은 형형색색의 구두 사이로 비치는 연보라색 컨버스 운동화였다. 정확한 모델명이 ‘컨버스 올스타 1923 척 테일러 농구화’인 이 운동화는 “앙투아네트가 그저 평범한 십대 소녀였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소피아 코폴라와 디자이너 밀레나 카노네로가 일부러 삽입한 것이다. 80년대 뉴웨이브 팝과 펑크록으로 이루어진 사운드트랙 역시 같은 의도로 배치된 것이며, 배우들의 악센트도 영국식, 캘리포니아식, 불어식으로 중구난방 사용된다. 하지만 코폴라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이라는 의문에 반문한다. “대부분 18세기의 시대적 고증을 기본으로 했다. 다만 ‘걸작 사극’ 종류의 영화를 만드는 것이 나의 가장 거대한 공포였다. 극적인 장면을 재연하는 건조한 시대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예술적인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코폴라는 가장 유명한 앙투아네트 평전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1932)를 아예 읽지 않았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츠바이크의 평전을 읽음으로써 앙투아네트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를 갖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코폴라가 영화의 원안으로 삼은 책은 안토니아 프레이저의 <마리 앙투아네트: 여행>이다. 프레이저의 책은 소녀에서 정치적인 인간으로 성장해갔던 앙투아네트의 내면을 좀더 인간적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그녀를 혁명의 재물로 삼았던 프랑스혁명의 폭력적인 면모들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코폴라는 프레이저의 평전의 거의 절반, 베르사유 부분만을 뚝 잘라 느슨한 원안으로 삼았다. 완성된 영화를 본 프레이저는 분노했을까? 2005년 11월에 코폴라의 첫 번째 편집본을 본 프레이저는 소파에서 거의 튀어올랐다고 전해진다. 물론 영화에 탄복했기 때문이었다. “코폴라가 종종 내게 말했던 ‘로큰롤’이라는 단어가 암호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코폴라의 시대적 착오성을 사랑한다. 핑크와 터퀴즈색의 몽타주 사이에 비치는 컨버스화를 사랑한다. 이건 그녀의 버전이며 정말이지 ‘로스트 인 베르사유’다!”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의 일종인) 브로슈를 먹게 해” 혹은 “Let Them Eat Cake”라는 간결한 영어 문장으로 널리 알려진 그 말을 했던 것일까. 안토니아 프레이저와 코폴라를 포함, 현대 역사학자들의 대부분은 그것이 일종의 유언비어였다는 학설을 강하게 신뢰한다. 프레이저의 <마리 앙투아네트: 여행>에 따르면 앙투아네트는 일기에 “자신들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매우 잘 대해주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그들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분명해집니다. 왕은 이 진실을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대관식 날을 평생(제가 100년을 산다 하더라도) 잊지 못할 겁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가의 가족 중 소작인의 옥수수밭 위로 마차를 짓밟고 지나가기를 거부한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저 유명한 유언비어 문구가 영원히 앙투아네트를 떠날 리는 없다는 게 비극이라면 비극.

코폴라는 처녀작 <처녀 자살 소동>에서 당시 16살의 어린애였던 커스틴 던스트와 일해본 경험이 있다. “던스트는 내가 프레이저의 전기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배우다. 던스트는 기운이 넘치고 약간 바보 같은 면도 있고, 동시에 진정한 깊이를 표현할 줄도 안다. 영화를 홀로 이끌어갈 수도 있다고 확신했다.” 물론 던스트의 게르만족 핏줄 역시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음은 분명하다. “던스트는 독일인이다. 그래서 전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그녀를 묘사하는 것과 정말 똑 닮았다.”

영화에 삽입된 노래들은 대부분이 80년대 ‘뉴 로맨틱 록’ 밴드들과 90년대 포스트-펑크 밴드들의 대표곡들이다. 뉴 오더의 <Ceremony>와 <Age of Consent>, 큐어의 <All Cats Are Grey>와 <Plainsong>, 수지스 앤드 더 밴시스의 <Hong Kong Garden> 그리고 영화를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는 바우 와우 와우의 <I want candy>는 물론이거니와 일렉트로니카 뮤지션 에이펙스 트윈의 앰비언트 음악까지 관객의 귀를 현혹시킨다. 소피아 코폴라는 자신이 애호하는 현대 음악들을 과잉되게 사용한다는 비판을 종종 들어왔다. <마리 앙투아네트>에서도 코폴라의 ‘내가 사랑하는 노래 메들리’는 대단히 과하고 상징적인데, 이는 18세기의 박제된 여인을 현대의 십대 소녀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가장 유효한 영화적 서커스 중 하나다. “나는 80년대에 십대 시절을 보냈고, 당연히 나에게 십대 시절은 곧 뉴 로맨틱 록의 시대다.”

많은 인디영화 감독들이 저가 디지털영화의 기술적인 세례를 거침없이 흡수하고 나선 것과는 달리, 소피아 코폴라는 오직 필름만을 이용해서 영화를 만든다. “(촬영감독인) 랜스 아코드와 나는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해보라는 제의를 받은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영화가 마치 기억처럼 로맨틱하게 느껴지기를 원한다. 오직 필름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필름은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고 로맨틱한 과거의 느낌을 전해준다. 바로 그것이 나라는 사람이 사진들을 통해 사물들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필름은 약간의 거리감을 안겨준다. 반면에 디지털은 즉각적인 긴박감을 전해준다. 그래서 디지털은 그다지 회고적이지 않다. 물론 필름은 그다지 오래 살아남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용할 수 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필름으로만 영화를 만들고 싶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빌 머레이

<처녀 자살 소동>의 화자인 네명의 소년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빌 머레이, 그리고 제이슨 슈워츠먼이 연기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루이 16세. 소피아 코폴라 영화의 남자주인공들이 성적으로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탓에 여성에게 먼저 다가가길 머뭇거리는 종족들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코폴라는 지오바니 리비시가 연기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사진작가 캐릭터를 통해 평소 너드(Nerd)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전남편 스파이크 존즈(<존 말코비치 되기>)를 능글맞게 패러디한 적이 있다. 물론 코폴라는 이 같은 혐의를 담백하게 부인했다.

소피아 코폴라의 역사적 순간은 오스카 각본상 수상이 아니다. “나에게는 (프랑스 영화잡지) <마리 앙투아네트>가 <카이에 뒤 시네마>의 표지에 등장한 것이 가장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나에게는 역사적 순간(Historic Moment)이었다.”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

<마리 앙투아네트> 이전에 앙투아네트를 다룬 가장 인기있는 팝문화적 아이콘은 일본의 소녀만화가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유의 장미>(ベルサイユのばら)다. 코폴라가 읽기를 거부한 슈테탄 츠바이크의 평전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이 작품은 1972년부터 73년까지 일본 슈에이샤의 잡지 <마거릿>을 통해 연재됐고, 1979년에는 TV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 <베르사유의 장미>는 ‘오스칼’이라는 가상의 남장 여자 캐릭터를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프랑스 대중은 이 같은 극적 허풍을 전혀 거부하지 않았고, <쉘부르의 우산>의 자크 드미 감독에 의해 <레이디 오스칼>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파티장면에서는 두번의 마약 흡입장면이 나온다. 트리아농에서 벌어진 가든 파티에서 앙투아네트와 랑발 부인은 대마초(혹은 그와 비슷한 흡연용 마약)를 흡입하고, 앙투아네트의 생일 파티에서 노아이유 백작부인은 코카인으로 추정되는 마약을 손등에 올려놓고 코로 흡입한다. 안토니아 프레이저의 기록에 따르면 코폴라는 “당시의 파티에서도 사람들이 코카인 같은 것들을 흡입했을까요?”라고 캐물었다고 하니 혐의는 분명하다. 하지만 1855년 이전까지 코카인은 지금과 같은 가루 형식으로 정제되지 못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프로덕션디자인을 맡은 사람은 스파이크 존즈의 <어댑테이션>과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캐릭터의 정신상태를 완벽하게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재주를 과시한 K. K. 배럿이다. 하지만 그에게 베르사유는 상당히 까다로운 장소였다. “베르사유의 자유로운 출입 권한을 얻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베르사유의 규모와 화려함을 생각해보라. 그걸 재창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사유는 박물관이다. 당시의 생활에 대한 얼어붙은 재현이다. 우리는 그것이 생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어떤 방에서는 블라인드를 걷어낼 수도 없었다. 직사광선이 섬유의 색채를 윤색시킬 위험 때문이었다. 게다가 베르사유의 어떠한 가구들도 이용할 수 없었다. 제약이 많은 장소에서 영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는 건 대단한 모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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