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공연
햄릿에게 죽음의 의미를 묻다
김현정 2007-05-17

<노래하듯이 햄릿> 5월18~27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0505-388-9654

“햄릿은 언제나 죽음의 경계에 있는 인물이다.” <노래하듯이 햄릿>의 연출가 배요섭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재창조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노래하듯이 햄릿>은 우유부단한 인물의 전형으로 해석되어온 햄릿에게 죽음의 의미를 묻는 음악극이다. 죽음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를 기억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죽음도 괜찮은 것일까, 죽은 자는 산 자에게 무엇을 남기는 걸까. 광대들이 끌어가는 <노래하듯이 햄릿>은 이처럼 무거운 질문을 던지면서도 경쾌하고 냉소적인 어조를 잃지 않는다.

다섯 광대는 가면 놀이와 노래를 하면서 죽은 자를 저세상으로 보내주는 이들이다. 햄릿이 남긴 수첩을 주운 그들은 한 대목 한 대목 사연을 읽어가며 즉석에서 배역을 나누어 맡아 햄릿의 이야기를 관객에게 펼쳐놓는다. 왕자 햄릿은 아버지가 죽은 지 두달도 되지 않아 어머니가 삼촌과 결혼하자 우울증에 시달린다. 어머니를 향한 원망을 품고 방황하던 햄릿은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고, 아버지가 삼촌에게 독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수해다오, 복수해다오. 햄릿은 아버지의 애원을 들으면서도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광대들은 이 절절한 기록을 극으로 재현하면서도 극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엔 “생각이 너무 깊어”라며 햄릿을 조롱한다.

<하륵이야기> <상자 속 한여름밤의 꿈> 등으로 알려진 공연창작집단 뛰다는 인형과 오브제를 활용해 <노래하듯이 햄릿>을 독특한 리듬을 지닌 극으로 만들어냈다. 이 공연에서 햄릿과 주변 인물들은 광대들의 몸짓으로 생명을 얻는 인형들이다. 광대들은 몸통 대신 길게 너울거리는 천이나 나무상자, 우산 등을 달고 있는 인형을 놀리며 그들이 품고 있는 사연과 갈등을 쏟아낸다. 권력과 욕정에 무너져 형을 살해하고 만 클로디어스의 회한, 어미로서 여인으로서 다만 사랑했을 뿐인 거트루드의 속내,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약속한 연인에게 아버지를 잃은 오필리어의 눈물. 그순간만은 모두가 주인공인 이들은 은방울꽃을 흔들며, 무표정한 가면 위로 보이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아직 저세상으로 가져가지 못한 미련을 토로한다.

무엇보다도 제목이 보여주듯 <노래하듯이 햄릿>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흐르는 음악극이다. “아직 음악극이 무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이름붙이고 싶었다”는 배요섭 연출은 때로는 고대 비극처럼 때로는 한국의 악극처럼 정서와 장르를 뛰어넘는 음악들로 극을 끌어가고 있다. 비통한 독백을 전하다가도 순식간에 장터 연극처럼 분위기를 바꾸는 <노래하듯이 햄릿>은 형식적인 논리보다는 감정에 충실하고자 하는 음악이 없었더라면 밀도를 가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골목골목 뮤지컬 빨래> <폴 인 러브>의 음악감독이었던 한정림이 작곡과 피아노를 맡았다. 배요섭 연출은 이후 <보이첵>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음악극 3부작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