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이라 불리지만 실은 브레인스토핑(brain-stopping)에 더 가까운 아이디어 회의 시간. “비의 웃통을 벗기는 겁니다! 여심을 잡는 최고의 광고가 될 거예요!” 라는 내 흑심 품은 이야기에 박수치는 건 여자들이요, 너는 왜 그리 쉽게 갈 생각만 하느냐며 호통치는 것은 디렉터렸다. ‘시선을 확 잡아당기는 광고 만들면서 비의 코브라 근육도 덤으로 만져보는 게 뭐가 나빠. 광고주도 분명 좋아할 텐데!’ 속으로만 구시렁댄다.
보통 빅모델을 기용하는 광고를 쉽게 가는 광고라고 말한다. 뒤통수를 때리는 강렬한 아이디어나 “맞아, 맞아”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인사이트 없이도 모델이 가진 강력한 이미지에 기대서 제품에 원하는 이미지를 겹쳐 바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광고쟁이들의 밥줄이자 동시에 가장 큰 적인 광고주를 설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델을 누구로 할 것인가 논의하는 회의자리에 항상 등장하는 사람들이 톱스타들이다.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대표미남에다 남녀노소 누구나 녹아 내리게 만드는 장동건과 붕어빵처럼 똑같은 얼굴을 한 여자 연예인들 사이에서 독특한 미모와 연기로 그녀만의 아우라를 구축한 이나영은 절대 빠지는 법이 없다. 이 안티 없는 청정 스타의 조합이라면 가히 꿈의 캐스팅, CF를 아무리 못 찍어도 최소한 삼루타는 보장이다. 뭐, 당연히 모델료는 엄청나게 비싸겠지만.
실제로 장동건-이나영이라는 무시무시한 캐스팅을 내세운 광고가 있었다. 이 둘의 조합을 처음으로 선점한 쪽은 삼성카드. 역시 돈 많은 집은 달라요. 예전부터 정우성, 고소영 등 당대의 톱스타들만 고수했던 회사답게 이 둘을 내세워 고급스럽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쇼핑을 좋아하는 이나영과 여행을 좋아하는 장동건 모두 삼성카드를 쓴다는 광고였지. 그 광고 때깔 한번 참 좋았다. 화면이 꽉 차는 미모의 소유자가 나오니 어쨌든 시선은 따라 움직인다. 최근엔 장동건이 해외 나가서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선물도 사들이는 때깔 광고가 하나 더 나왔던데 역시 빅모델 광고의 전형적인 답안되시겠다.
그리고 최근에 ‘닌텐도DS’ 가 게임기 광고로는 의외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장동건 편이 온에어되었을 때, 우리의 완벽한 동건씨가 닌텐도를 손에 들고 58살이라는 어이없는 두뇌나이에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 즐거운 반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두뇌나이를 궁금해 했음은 물론이요, 대한민국 제1의 남자도 게임을 한다는 사실에 쾌재를 불렀다. 이제 “다 큰 어른이 무슨 게임기를!”이라는 손가락질에 “흥! 장동건도 한다!”고 대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곧바로 온에어된 이나영 편은 2단 콤보 펀치였다. 순수와 신비의 그녀가 닌텐도DS를 쥐는 순간, 그 물건은 ‘이나영도 푹 빠져 뒹굴게 하는’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기기로 탈바꿈한다. 장동건의 유혹에도 꿋꿋이 버티던 사람들은 “나영이 너마저!'”를 외치며 지르라는 소리에 굴복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최근 TV 온에어되는 광고에서 장동건은 능숙한 솜씨로 젊어진 두뇌나이에 으쓱한 미소를 지어 온 국민을 흐뭇하게 만들고, 이나영은 ‘단비’라는 강아지를 부르며 나타나 많은 사람들에게 닌텐독스를 키우고 싶다는(혹은 이나영의 강아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더라.
가장 게임과 거리가 멀 것 같은 사람으로 뽑혀 모델이 되었다는 장동건과 이나영. 그저 게임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인 15초 광고지만 참 많은 일들을 해냈다. 빅모델의 명성을 활용하면서도 그들의 배우적 이미지를 걷어내고 자연인의 모습을 드러내 한번 뒤집어줌으로써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이를 통해 게임기가 쓴 ‘오덕후’(오타쿠)의 누명을 벗겨내고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명민함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모델과 찰떡궁합인 게임소프트까지 매치해 한꺼번에 세트로 “너도 질러!”(NDSL)라며 속삭이기까지 한다.
닌텐도DS, 모델도 분명한 크리에이티브임을 보여주는 개성 넘치는 답안지다. 참 잘했어요. 짝짝짝짝! 덧붙여 여기에 넘어가 이 물건을 ‘나도 질러’버렸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