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항쟁이 마련한 한국 민주주의의 원(原)공간은 일반민주주의 너머의 체제를 더듬어 찾는 유혹의 공간이기도 했다. 시민항쟁의 바람을 타고 일기 시작한 정치적 자유의 물결 위에서 이미 혁명의 멀미를 겪은 세력도 있었겠으나, 마르크스주의에 젖줄을 댄 노동운동의 일부 주체들은 ‘진짜 혁명’을 꿈꾸고 있는 듯 보였다. 1871년의 파리코뮌이나 1917년의 볼셰비키 집권 같은 혁명 말이다. 혁명 러시아를 본떠 동유럽에 들어선 체제들이 내부 모순과 세계자본주의의 압력으로 거북이 등딱지 꼴이 돼가고 있던 그 순간, 얄궂게도 한국에서는 그 체제를 희망의 종착역으로 삼은 관념의 레일들이 속성으로 깔리고 있었다. 현실사회주의 체제의 실상에 대한 정보가 모자랐던 탓이기도 했을 테고, 오래 지속된 유사파시즘 체제에 대한 반작용의 힘이 컸던 탓이기도 했을 테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사회운동권의 일부 담론은 ‘한국혁명의 임박’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시대착오는 현실의 산문성(散文性)을 두루뭉술한 시적 언어의 변증법으로 무책임하게 대체하는 좌파 낭만주의자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오늘날 한국문학의 보수성을 상징하는 몇몇 평론가들도 그 때는 ‘변혁’이라는 이름의 혁명을 이야기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는 제대로 된 반-파쇼 지식분자의 아편이었을 뿐만 아니라 신분증명서이기도 했다.
복거일씨가 시사논평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처럼 단호하게 반공주의를 내세우는 지식분자는 그 이전에 지겹도록 보아왔지만, 제 반공주의를 그만큼 아치(雅致) 있는 문장에 실은 예를 나는 보지 못했다. 우수마발의 반공주의에 질려 생래의 반공주의를 쓰다듬기만 하고 있던 내가 이 글 잘 쓰는 반공주의자에게 반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복거일씨는 공적 글쓰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곧 자유주의자를 자임해 왔다. 그의 자유주의는, 적어도 그 초기에, 정부의 재분배 정책과 적정한 수준의 시장개입, 사회적 약자의 보호를 용인하는 정치적 지평을 지니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자유주의는 일종의 ‘정의감각’으로 조율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자유주의는 이내 급진적(근본적) 자유주의로, 그러니까 최소정부를 지향하는 ‘효율’ 제일의 시장지상주의로 변했다. 이름을 유지한 채 실체를 바꿔치기한 셈인데, 묘한 것은 복거일씨가 자신의 ‘전향’을 의식하지 못하는(않는) 듯하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의 ‘전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향’ 이후 그의 자유주의가 자유지상주의와 권위주의라는 두 대척점을 자유롭게 오간다는 데 있다. 김대중 정부 이후의 알량한 복지정책과 재벌개혁 시도를 겨냥해 말의 팔매질을 할 때, 복거일씨는 도저한 자유지상주의자다. 박정희 전두환 체제를 슬그머니 또는 노골적으로 두둔할 때, 그는 때를 놓친 권위주의 이데올로그다. ‘(낭만적) 권위주의자 복거일’은 복거일씨의 거듭되는 군대 예찬에서도 실루엣을 드러내는데, 그 실루엣은 그가 높이 평가하는 과학소설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그림자와 설핏 겹친다. 그러니까 ‘전향’ 이후 복거일씨는 로버트 달이 민주주의의 양방향 비판자로 설정한 무정부주의와 수호자주의를 동시에 끌어안는 묘기를 보여 왔다. 이 분열증을 그가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옹호하는 ‘소수’가 늘 ‘힘센 소수’이기 때문일 테다.
새천년 앞뒤로, 나는 노무현씨에게 반했다. 집권하기 전, 그는 약자의 편에 서겠다 했다. 그의 비판자들에 따르면, 그는 집권한 뒤 제 약속을 저버렸다 한다. 그러나 그런 정치인이 한둘이 아니니, 노무현씨를 특히 비난할 일은 아닐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가 집권한 뒤 낯을 바꾼 것이 크게 비난받을 일 아니듯, 그가 집권하기 전 약자들과 연대한 것도 (윤리적으로) 크게 칭찬받을 일은 아닐 게다. 이런저런 상징자산이 모자랐던 노무현씨에게, ‘약자동맹’은 필요불가결한 집권 전술이었다. 그와 그 동료들의 완장에 요란스레 새겨진 반-지역주의 구호 역시 마찬가지다. 노무현표 반-지역주의는 분칠한 영남패권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자들의 지적이 설령 그르다 해도, 호남에서는 구조적으로 ‘노무현’이 나올 수 없는 만큼(호남 출신 정치인의 반-지역주의 제스처에 눈시울이 젖어들 영남 유권자는 거의 없을 게다), 그의 반-지역주의 제스처에 윤리적으로 높은 점수를 매기는 것은 지나치다.
복거일씨에 대해, 그리고 노무현씨에 대해 내가 투덜거리기 시작했을 때, 혜안의 친구들은 그걸 처음부터 몰랐느냐며 나를 타박했다. 나는 몰랐다. “척 하면 척!”은 내 능력 너머에 있었다. 나는 복거일씨의 ‘우아함’에, 노무현씨의 ‘진실됨’에 홀렸다. 말할 나위 없이, 비판받아야 할 것은 헛것으로 호린 자의 재주가 아니라 헛것에 홀린 자의 미욱함이다. 명색이 기자라는 자가 참. 그저, 바로 나 자신이 그 일원인 인류의 남루함을 잊지 말고, 세상사를 판단하는 덴 늘 삼감이 있어야겠다는 자경(自警)의 계기로 삼아야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