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를 닮은 광고’들이 10대란 과녁을 향해 힘차게 활시위를 당기고 있다. 이동통신시장에 뛰어든 10대전용브랜드인 팅(ting), 비기(Bigi), 카이홀맨 등의 CF다. 011이니 016이니 018이니 019니 하는 숫자브랜드에 안주해 있는 휴대폰 사용자는 이제 ‘부시맨’ 같은 존재일지 모른다. 1823세대를 겨냥한 TTL, Na, 카이 등이 어느덧 이동통신을 대표하는 범용 브랜드로 자리를 잡았으며, 여성전용브랜드에 이어 10대만을 위한 브랜드마저 탄생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젊은 감수성의 자장은 TTL를 비롯한 1823세대 이동통신브랜드 광고가 이미 충분히 포괄해왔다고 여겼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나보다. 팅, 비기, 카이홀맨 등 이름부터 경쾌하고 발랄한 10대 브랜드의 광고가 ‘이제부터 시작이야’를 외치며 본격적으로 ‘틴’문화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10대를 관통해 지금 이 나이에 와 있는 게 분명할 터인데 그때 그 시절의 감성을 되새기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영원한 피터팬을 자처하는 젊은 오빠들도 ‘초·중·고딩’을 대면하면 ‘나도 옛날엔 저랬었나’ 하는 낯섦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다. 그렇게 오늘의 10대는 기성세대와 다른 그들만의 영역과 세계를 구축하고 있고, 그것은 또 타깃 밖의 ‘탈’ 10대에게도 엿보기의 강렬한 호기심을 충동질한다. 가장 잠재력이 높은 소비층으로 10대를 상정한 이동통신업체들은 10대 전쟁을 선포하면서 가장 먼저 작명에 심혈을 기울였을 터이다. 산고 끝에 탄생했을 각 브랜드를 살펴보면 저마다 그럴듯한 사연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TTL의 ‘아우’격인 팅(ting). 이른바 소개팅이나 미팅의 끝자인 팅에 해당하는 말로 10대에게 이동통신문화가 곧 만남을 의미한다는 사실에서 착안했다. 다음은 비기(Bigi). 타깃인 1318세대(13살부터 18살까지)의 1318과 모양이 유사한 영문이니셜을 조합한 신조어다. 마지막으로 019의 카이홀맨. 형 브랜드인 카이에다가 ‘홀맨’이란 캐릭터이름을 붙여 만든 브랜드다. 이들의 론칭 광고는 10대전용브랜드의 탄생을 알리고 브랜드를 10대 소비자의 기억단자에 넣겠다는 공통된 목표 아래 크리에이티브를 발현했다. 가장 충실하게 브랜드 알리기에 나선 주자는 팅 광고. 처음부터 끝까지 팅만을 반복해 외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란 말의 멜로디와 리듬에 맞춰 남녀가 ‘팅팅팅 팅팅 팅팅팅팅팅’을 외치며 도리도리게임을 즐긴다. 조금이라도 호흡이 어긋나면 마지막에 눈빛을 맞추지 못하고, 이것은 곧 진정한 ‘팅’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10대 남녀의 ‘팅’게임으로 이 CF는 ‘팅하자’란 메시지를 생동감있게 알린다. ‘팅하자’에는 ‘팅’이란 브랜드를 사용하자란 뜻과 ‘만나자’란 말의 대체어로 10대에게 널리 다가가겠다는 노림수가 담겨 있다. 축약어 등 언어유희를 즐기는 10대의 속성을 엿볼 수 있다.비기 광고와 카이홀맨 광고의 무대는 공통되게 교실이다. 교실은 10대의 일상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 그런데 두 CF가 교실 안 풍경에 접근하는 방식은 판이하다. 비기 광고가 만화적이라면 카이홀맨 광고는 현실감이 있다. 비기 광고엔 고무재질의 가발을 쓴 만화주인공 같은 학생들이 버글거린다. 주인공은 맨 뒷자리에 앉은 여학생(모델은 서태지의 컴백앨범 포스터에 등장했던 신세경). 수업시간에 공부할 생각은 하지 않고 그는 손가락 사이로 선생님을 들여다보며 ‘내가 선생님보다 크다’라는 맹랑한 가설을 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 가설이 들어맞는다.
여학생이 재채기를 하자 이것이 태풍처럼 교실을 휩쓸더니 급기야 선생님을 껌처럼 칠판에 달라붙게 만든다.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는 여학생의 반응이 능청스럽다. ‘어, 내가 더 큰데.’ 1318세대에서 비기(Bigi)란 브랜드를, 비기에서 ‘크다’(big)란 컨셉을 추출한 이 CF는 명랑만화 같은 유쾌한 분위기로 1318세대의 큰 잠재력을 표현한다. 특히 선생님을 제압하는 엄청난 재채기 파워의 소유자인 여학생을 통해 기성세대(선생님)을 향한 귀여운 도발을 감행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카이홀맨 CF는 연출되지 않은 상황인 듯 자연스러운 영상을 보여준다. 분위기는 사실적인데 설정은 독특하다. 전학 온 학생이 움직이는 인형이다. 이름은 홀맨. 선생님의 소개에 따라 홀맨은 교실에 들어서려 하지만 비대한 몸집 때문에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홀맨이란 새 친구를 쳐다보는 학생들의 호기심어린 시선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반가워’를 외치는 여학생(가수 조앤)의 목소리가 정겹다. 캐릭터를 분신처럼 좋아하는 10대의 특성을 고려해 홀맨이란 귀여운 캐릭터로 승부수를 던진 이 광고는 적절한 눈높이 전략을 구사한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론 카이홀맨 CF에 가장 호감이 간다. 이질적인 존재의 조건없는 수용은 10대만의 특권이 아닐까. 홀맨이란 아주 특별한 전학생을 향한 학생들의 환호엔 구분짓기와 벽쌓기에 길들여진 기성세대와 다른 10대만의 무한한 흡수력이 담겨 있다. 론칭 광고에 이어 후속광고를 통해 경쟁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10대전용 이동통신브랜드들 가운데 누가 가장 강렬한 ‘반가워’의 반응을 낚아챌지 궁금하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