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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의 미드나잇] 악마는 여기저기 등장한다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한 캐릭터 등장하는 <어글리 베티>

<어글리 베티> KBS2 토요일 오후 12시50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런웨이>라는 가상의 패션 잡지를 이끄는 신화적인 인물 미란다(메릴 스트립)가, 실은 1988년부터 지금까지 미국 <보그>의 편집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살아 있는 패션계의 전설’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한 것임은 웬만큼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록 영화에는 없지만,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는 다음과 같이 안나 윈투어를 직접 등장시켜 소설이 그녀를 모델로 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줌과 동시에 그녀와 그녀의 패션에 대한 오마주를 보내고 있을 정도다.

“슬쩍 밖을 내다보니 그곳에 안나 윈투어가 있었다. 나는 그녀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크림색 실크 끈 드레스와 비즈 장식 마놀로 샌들을 신은 그녀는 너무나도 황홀한 모습이었다. 알이 매우 큰 샤넬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그녀가 지금 즐거운지 무관심한지 울고 있는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인 듯한 남자에게 발랄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언론은 안나와 미란다의 독특한 점과 태도를 비교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난 내 상사만큼이나 참기 어려운 존재가 세상에 또 존재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한글판 2권 267페이지)

그렇다면 이른바 ‘코믹 버전’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알려진 미국 드라마 <어글리 베티>에서는 어떨까? 컬럼비아에서 제작, 방영된 이 드라마의 원작 드라마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어글리 베티>에서도 아주 명확하게 안나 윈투어를 염두에 둔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만큼 패션 잡지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데 안나 윈투어만큼이나 확실하게 자기 색깔을 가진 인물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설정과 아주 유사하게 이야기가 시작되는 <어글리 베티>에서 안나 윈투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인물은 누구일까?

여기서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한다면, 아마도 차기 편집장을 노렸지만 굴러들어온 회장의 둘째아들에게 편집장 자리를 빼앗긴 윌레미나(바네사 윌엄암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베티(아메리카 페레라)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면을 제외하면, 보톡스 주사를 수시로 맞고 과감한 옷으로 승부하다가도 어느 순간 남이 먹다 남긴 햄버거를 탐하고 마는 윌레미나 캐릭터는 안나 윈투어 혹은 그녀를 벤치마킹한 미란다와도 확연히 구별된다. 게다가 미란다가 안나 윈투어의 트레이드마크인 금발 보브커트 헤어스타일과 유사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반면, 윌레미나는 그녀만의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이리저리 바꾸면서 등장한다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어글리 베티>에서 안나 윈투어를 모델로 해 등장한 인물은 실은 윌레미나가 모시던 전 편집장 페이 소머다. 사실 드라마가 시작하는 시점에서부터 이미 죽은 인물로 그려지는 탓에 그녀가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드라마 중간 중간에 그녀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나 광고 컷 등이 등장하는데, 그 속의 모습이 안나 윈투어를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중간중간 등장인물들이 페이 소머 이야기를 하는 장면들에서 페이 소머는, 미란다가 그랬던 것처럼 안나 윈투어를 닮은 ‘진정한 악마’로 그려진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녀와 내연의 관계에 있던 잡지사 회장의 주변에 페이 소머의 모습을 한 여인이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녀가 안나의 트레이드마크인 금발 보브커트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는 사실이다.

비록 뉴욕의 잘나가는 패션 잡지 회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놓고 웃기는 코미디인 <어글리 베티>에서조차 어떤 식으로든 활용하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안나 윈투어는 신화적 존재가 분명한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를 모델로 해 만든 페이 소머 캐릭터를 모방해서라도 성공에 목숨을 거는 중년 커리어우먼 윌레미나가 실력보다는 넉살과 운으로 승부하는 베티보다는 훨씬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평가는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자신의 운명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갈 의지를 가지고 그것을 실행해나가는 등장인물에 시청자들이 호감을 가지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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