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복장부터 소녀들의 안경까지 사적이고 은밀한 열광-‘모에’란 무엇인가로리콘을 이해할 수 있는가. 야오이를 이해할 수 있는가. 혹은 10대 소녀 아이돌 그룹이 춤을 추는 무대 앞에서 함께 율동을 따라하는 아저씨의 마음을 100%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문화는 그 범위가 매우 다양해서 가끔씩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포장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다양해서 다양할 수 없는 모순. 최근 인터넷에서, 신문 기사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모에 문화도 그렇다. 음란하고 변태적이지만 어찌됐던 화제고, 어찌됐던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문화. 받아들일 순 없다 하더라도 알고 보면 새로운 게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어쩌면 이해란 본래 나를 버리고 상대방의 위치에 서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아닐까.
‘권상우 모에모에’, ‘미즈호, 초(超)~모에’. 한국의 디시인사이드와 같은 일본의 인터넷 게시판 투채널(www.2ch.net)에는 ‘모에’(萌え)라는 표현이 들어간 게시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등을 즐겨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퍼져나간 이 단어는 특정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말. ‘새싹(萌)이 돋는다’는 의미로, 인터넷 유행어 ‘버닝(burning)하다’와 같이 무언가에 집중하거나, 좋아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아저씨의 변태놀이 혹은 새로운 문화의 싹
하지만 모에는 표현의 유래가 캐릭터를 다양화, 구체화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호감을 뜻하는 표현들과 의미의 층위가 다르다. 예를 들어 <에반게리온>의 아야나미 레이. 90년대 애니메이션 팬들이 레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좋아 레이에 버닝했다면, 오늘날의 애니메이션 팬들은 붕대를 감고 있는 레이의 모습이 좋아 레이에 모에한다. 이것이 ‘붕대모에’. 또는 <오네가이 티처>의 성숙한 여자 캐릭터 미즈호를 보며 연상녀 이미지가 좋아 누나에 모에한다. 이것이 누나모에. 모에의 방식은 이 같이 매우 다양한 경우의 수를 통해 확장된다. 치마 아래로 살짝 보이는 팬티에 몰두하는 ‘판치모에’(속옷을 의미하는 판쓰(パンツ)에 흘끗을 의미하는 치라리(ちらり)가 더해진 표현)나, 80년대 일본의 여자 중학교에서 입었다는 검정 수영복에 호감을 느끼는 ‘스쿨미즈모에’ 등.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대상으로 주로 남자 소비층이 즐기는 모에 문화는 그래서 다소 외설적이다. 위험하다. 아슬아슬하다. 실제로 오타쿠 문화 내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모에는 단순히 문화의 다양성이란 말로 변호하기엔 잡음이 너무 많다. 한마디로 ‘변태적’이라는 수식어도 쉽게 떨쳐낼 수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모에가 90년대 후반 죽어가는 아키하바라(한국의 용산과 같은 전자 상품 가게가 모여 있는 지역)의 경제를 지켜낸 주역이라 분석한다. 2005년에는 ‘신어·유행어대상’에서 10위에 선정됐으며, 요코하마총합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2003년 모에 관련상품 시장은 총 888억엔에 이른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게임,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새롭게 주목해야 할 요소로 모에를 지목했고, 한국에서는 인터넷 블로그와 게시판 등을 통해 ‘모에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아저씨들의 변태놀이냐, 새로운 문화의 싹(萌)이냐. 바다 건너에서 바라보는 모에는 마치 위험한 줄타기와 같다.
모에는 정확한 캐릭터에서 싹튼다
모에를 이해하는 기초는 모에의 요소다. 모에 요소는 특정 캐릭터의 신상 착의에서 추출되는데, 여기엔 어떠한 제한도 없다. 우선 캐릭터의 연령에 따라 로리(롤리타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말), 미소녀, 누님 등으로 나뉘고, 머리 스타일에 따라 트윈테일(양옆으로 묶은 머리), 금발, 포니테일 등으로, 귀모양에 따라 우사모에(兎, 토끼 귀), 네코모에(猫, 고양이 귀) 등으로 갈린다. 이 밖에도 눈동자색에 따른 색안구모에가 있으며, 다리에 가터벨트를 찼느냐, 안경을 썼느냐에 따라 특정 모에 요소가 추가되기도 한다. 모에의 요소는 그 범위가 수용자의 기호와 상상력에 달려 있기 때문에 무한하다. 고어적인 요소가 가미돼 손에 피를 묻힌 소녀가 등장하기도 하고, 마법사 의상을 입은 소녀가 고딕양식의 성 안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곧 이야기를 확장하고, 애니메이션 장르를 구체화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특정 모에를 겨냥한 작품들이 제작되기도 했다. <오네가이 트윈스>의 학생회장 캐릭터는 로리모에와 누님모에를 적절하게 혼합한 것. 나이는 누님이라 정신적으로 성숙하였으나, 육체는 로리로 형상화해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로리’ 캐릭터를 완성했다. 모에 요소가 캐릭터를 형성하고, 캐릭터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변주, 확장이 무한한 모에 문화지만 각 모에 요소의 규칙은 엄격하다. 붕대모에의 경우 붕대를 감은 횟수가 일정해야 하며, 머리에 감은 붕대는 한쪽 눈을 가려야 한다. 로리모에는 미성숙한 소녀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도 큰 가슴을 가질 수 없다. 큰 가슴을 가진 소녀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그건 거유(巨乳)모에로 보는 편이 맞다. 이 밖에도 누님 캐릭터는 생활력이 강하고 성격이 활발하며 주야간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구노이치(여성 닌자) 캐릭터는 강하고 빠르며 가슴에 붕대를 감고 있다. 모에는 이렇게 이야기보다 캐릭터에 치중한 놀이다. 작품성의 저하, 과도한 페티시즘 등의 위험은 모에가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요소다. 실제로 2006년에는 초등학생, 중학생 여자아이들을 모델로 T팬티를 입힌 DVD가 제작되면서 사회에 물의가 일기도 했다. 물론 모에는 주로 2D애니메이션 세계에서, 일정 정도의 현실과의 괴리감을 갖고 향유되는 문화지만, 13살 소녀의 ‘T백 DVD’가 로리모에적 욕망에서 비롯된 상품이란 건 부정할 수 없다. 아키하바라 지역엔 메이드 복장을 한 종업원들이 ‘주인님’을 외치며 마주하는 카페도 성업을 이루고 있다.
한국에도 넘어온 모에 문화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모에 문화가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 프리애니, 로리마스터의 모에보드, 모에화랑, 모에네코 등 모에 전문 사이트는 물론 개인 블로그를 통해서도 모에에 대한 정보가 오가고 있다. 특히 모에 관련 웹사이트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모에 토너먼트는 모에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후보로 예선과 본선을 거쳐 투표로 최종 승자를 가리는 이 시합은 일본의 투채널에서 실시되는 사이모에토너먼트가 가장 대표적. 2001년부터 시작됐으며 남자부, 여자부를 구분하고, 수십개의 조를 나눈 뒤 일대일 대결을 진행한다. 참가자의 투표 수로 결정된 승자는 8강에서 4강, 준결승과 결승을 거쳐 우승 캐릭터로 선정된다. 두달이 넘는 기간 동안 진행되며, 참여하는 인원은 수천명에 이른다. 2006년에는 로젠메이드 트로이멘트의 스이세이세키와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A’s의 페이트 테스타롯사가 각각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에서도 이 투표에 참가하는 네티즌이 많으며, 근래에는 특정 모에 사이트끼리 연합하여 개별적으로 콘테스트를 실시하기도 한다.
자니스 계열의 인기 남성 듀오 킨키키즈의 멤버 도모토 쓰요시는 거실의 사방을 어항으로 둘러놓았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치아키, 다마키 히로시는 신발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라 구입 뒤 신지도 않고 쌓아 놓은 신발이 50켤레가 넘는다. 오다기리 조가 출연한 인기 드라마 <시효경찰> <돌아온 시효경찰>의 주인공 키리야마는 취미로 시효가 종료된 사건을 수사하며, 시노하라 료코가 주연한 니테레 드라마 <파견의 품격>에는 파견 사원을 겨냥한 도시락 ‘파견 벤토’가 선보인다. 일견 아이돌 스타처럼 보이는 연예인에게 산뜻한 대답이 돌아오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사소한 구석에서 신선한 이야기가 새어나온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일상의 의외성에서 새로운 재미를 찾고, 재미의 진폭을 이야기의 확장으로 요리하는 재주를 지녔다. 그리고 이는 모에의 발상과 일맥상통한다. 모에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은 대중문화의 콘텐츠를 소비자 자신이 분리하고, 해석한 뒤 재조립하여 완성한다는 점이다. 캐릭터를 다양한 요소로 파악하는 방식 또한 일본 대중문화가 지닌 의외성의 한겹이다. 그것이 음란하거나, 불건전하고, 도덕적이지 못하다 하더라도 모에는 일본의 대중문화가 밟아온 길을 고스란히 반복한다.
모에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다니가와 나가루의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과 뉴욕에서 6800만엔에 판매된 무라카미 다카시의 인형 작품 ‘Miss Ko²’는 모에가 분명히 대중문화의 동력 중 하나임을 말해주는 사례다. 물론 이는 롤리타를 소재로 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로리타>가 롤리타 콤플렉스에 대한 변호가 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리 문화에 대한 보호 장치가 되지 못한다. 다만, 명확한 것 하나. 한국의 청춘 배우들에게서, 한국의 대중문화 속에서 의외의 신선함을 찾기란 쉽지 않다. 독서와 영화 감상을 맴도는 취미와 안전하게 시작해서 안전하게 끝나는 사랑 이야기는 진부하다. 조금은 음란하고,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개성이 좋지 않은가. 모에 문화의 잡음을 헤치고 건져낸 물음은 의외로 간단하다. ‘당신의 모에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