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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보기만해서는 알 수 없는 것들
장미 사진 서지형(스틸기사) 2007-05-10

<경의선>의 손태영

손태영은 까만 스키니진을 입고 있었다. <경의선> 기자시사회에서 짧은 미니원피스를 입어 화제를 불러왔던 그는 늘씬했지만 한편으로 수수해 보였다. 미스코리아 출신에 서구적이고 세련된 미인이라는 이미지, 데뷔 초부터 불거진 스캔들. 손태영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또 아무도 모르는 배우이기도 하다. 모두들 그의 사적인 관계에는 지극한 관심을 표했지만 배우인 그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침묵했다는 점에서. “구설수에 먼저 올랐죠. 어린 나이라서 철이 없기도 했어요. 옆에서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방송에 대처하는 능력도 없었죠. 당시에는 솔직하게 얘기했는데 편집이 되더라고요. 아, 진짜 무섭구나.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게 쉽구나. 그때가 큰 고비였어요.” 가십 기사 속 손태영을 떠올린다면 <경의선>은 확실히 의외의 영화다. 눈발이 흩날리는 임진각역, 우연히 만난 남녀가 상처를 반추하며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역전의 명수>를 연출한 박흥식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흥행 생각하지 않”은 채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감독의 바람도, 지적이고 당돌하지만 가끔은 부드럽고 어리고 유약하기까지 한 한나라는 캐릭터도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에겐 두려움으로 와닿았을 듯했다. “한나가 조금 섬세한 연기를 필요로 하는 역할이어서 고민을 했어요. 내가 못하면 작품에도 마이너스가 되니까 오래 잡고 있었죠. 주위에 조언을 구했는데 ‘이 작품을 계기로 네가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면 선입견을 깰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마음먹고 시나리오를 다시 읽었더니 언제 다시 이런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싶었어요.”

어렵게 선택했던 <경의선>으로 손태영은 두 차례나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첫 장소가 부산영화제에서 <경의선>이 상영된 뒤 벌어진 관객과의 대화였고 그 다음이 기자시사에 이어 열린 기자간담회였다. “비슷한 질문이었어요. <경의선>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계기가 됐는지 물으셨죠. 부산영화제에서 더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연기 잘 봤다면서 그 질문을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때 내게 너무 와닿는 질문이었고 그런 얘길 처음 들어보기도 했어요. 그냥 그전에 서러웠나봐요. (웃음) 나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담아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눈길신을 무리없이 소화하기 위해 박흥식 감독의 지도 아래 임진각까지 찾아가 김강우와 대본연습을 했는가 하면 영하의 날씨 탓에 구두를 신은 발이 너무 시려 괴로움도 겪었지만 그는 이제야 연기의 재미를 깨달은 눈치였다. “지금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더 나아가야죠. 연기 많이 못했는데 어떻게 잘할 수 있어요. 변명할 수도 없고 작품을 너무 많이 해서 완벽한 것도 아니에요. 나이도 그렇고 딱 중간이라고 생각해요.” 미스코리아 한국일보에 뽑힌 언니를 뒤따르듯 그는 제44회 미스코리아대회에서 ‘미’의 왕관을 물려받았다. 이후 도맡은 MC는 만족스런 직업이었지만 소속사는 그에게 연기자의 미래를 펼쳐 보였다. KBS 드라마 <순정>으로 첫걸음을 뗄 때까지만 해도 그는 별다른 포부없이 그저 주변의 권유를 따르는 쪽이었다고 털어놨다. “연기요? 연기는 시켜서 했어요. 그때는 MC가 재미있었거든요. MC 전문이 될 줄 알았는데 드라마 미팅을 하래요. 미팅만 하면 된대요. <순정> 때는 진짜 어색했죠. 예전에는 부족한 신을 다시 찍고 싶다고 말하지도 못했고 감독님과 대화할 줄도 몰랐어요. 매니저들이 걱정했을 정도예요. ‘너 정말 욕심 너무 없다’고.”

근래 손태영은 새로운 경험을 연이어 했다. MBC <베스트극장>의 <바다가 하는 말>에서 부산 여자 피바다로 출연해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선보였고 SBS 드라마 <연개소문>에서 처음 사극 연기에 도전했으며 채널CGV 5부작 드라마 <프리즈>에선 섹시한 뱀파이어로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 한창 촬영 중인 <기다리다 미쳐>에선 6살 연하남과 사귀는 29살 물리치료사 김효정을 연기하고 있어 그 진폭이 새삼 기대를 모은다. 5월 중에는 집안의 경사도 있을 예정. 언니 손혜임이 피아니스트 이루마와 5월27일 결혼식을 올린다. 올해 초에는 모델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인 쿨케이와의 열애를 시인하기도 했으니 이리저리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밖에. “뭐라고 해야 할까. 만나면서 확실히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요. 가장 좋은 때이기도 하고요. 우리는 거의 일적인 면에 대해서 묻고 답하는 식이거든요. 한번은 ‘네가 감독이라면 어땠겠니, 오늘 이런 문제로 스트레스받았어’ 그랬는데 ‘그분 말이 맞지 않니,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라더군요. 위로받고 싶었는데. (웃음)” 1시간여의 인터뷰가 끝나자 매니저가 주섬주섬 감기약을 꺼냈다. 감기에 걸린 나른한 상태로 하루 종일 인터뷰를 하고 사진을 찍은 손태영은 다음날 <기다리다 미쳐> 촬영장으로 곧장 떠나야 했다. 몸매를 드러내는 의상으로 갈아입고 사진 촬영을 마친 그는 헐렁한 티셔츠와 바지 차림으로 돌아왔다. 그가 남긴 말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아무래도 도시적인 역할이 많이 들어와요. 신인이면 이미지를 보고 쓰잖아요. 그때까진 괜찮지만 되풀이하다보면 역할이 고정돼요. 사실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에요. 그런 이미지를 깨려고 지난해부터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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