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난 아직 쓸 수 없다. 그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절대로 쓸 수 없다. 마음만은 다다랐어도 그것을 계속 유지할 역량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슬프지 않다. 나는 오래 살 생각이다. 해볼 작정이다. 이 각오도 요즘 겨우 섰다. 나는 문학을 좋아한다. 이것은 대단한 일이다. 이것을 놀려서는 안 된다.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나의 소소한 일상>이라는 에세이 모음집에 쓴 글이다. 저 글을 쓸 때의 다자이 오사무는 갓 서른 이 된 나이로, 자살에 성공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은 상태다. 자학적으로 보일 정도로 우울하게만 보였던 남자가 사실 저렇게 투지를 불태운 때도 있다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은 사람이라면 반세기쯤 앞선 그의 ‘루저 근성’에 혀를 내둘렀을지도 모르겠다. 사소설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다자이 특유의 징징대는 느낌에 치를 떨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소소한 일상>의 다자이는 조금 다르다. 소설에서보다 찌질하고, 단순하며, 솔직하다. 소설에서는 스스로를 꾸민다는 느낌이 남아 있었지만, 수필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일까. <나의 소소한 일상> 속 다자이는, 시시콜콜 드잡이하는 성격도 되지 못하면서 꽁하니 남의 잘못이나 남에게 서운한 점을 잘 기억하고, 패배의식에 젖어 있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더 나은 자신을 욕망하는 인물이다. 한마디로, 뒤끝있는 인간이다. 스스로에게나, 남에게나.
언젠가부터 쿨한 게 유행이고, 쿨한 사람, 쿨한 성격이 ‘있어 보이는’데, 꼭 쿨한 게 좋은 걸까. 연애하다 헤어지고도 ‘쿨하게’ 친구 사이로 지내고, 죽도록 싸운 뒤에 ‘쿨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지내는 게 마냥 좋은 일일까. 가끔 생각한다. 조금은 더 끈끈하고 신파스럽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헤어진 뒤 얼굴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의 연애라면 그건 애초에 사랑이 아니었던 건 아닐까. 지난 격분을 쿨하게 잊어버리는 동안 인생에 정말 중요했던 무언가를 간과해버린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