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라… 어떤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인지 오랜만에 생각해봅니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유치원생 때 형, 누나들과 함께 봤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고등학생 때 존 트래볼타의 춤을 배워보려고 하루 동안 첫회부터 마지막 회까지 다섯번을 연이어 보았던 <토요일 밤의 열기>, 처음 봤을 땐 ‘뭐 저런 놈들이 있나?’ 했다가 그 뒤 볼 때마다 불후의 걸작임을 느끼는 <대부>, 그리고 최근엔 남들이 좋다고 해 극장에선 못 보고 DVD를 사서 보다가 깜짝 놀란 <빌리 엘리어트> 등.
언뜻 생각나는 작품들이 누구나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인 걸 보면 개인적으론 남들이 잘 모르는 저주받은 걸작은 내 인생의 영화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마도 영화를 볼 때 제가 영화적인 이미지나 의미망으로 가득 찬 영화들을 잘 소화하지 못하고 그저 앞뒤가 맞는 이야기인가? 하는 부분에 집중해서 말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기에 기억나는 작품들도 대부분 그런 작품들 같습니다.
물론 영화적으로 뛰어난 작품들을 보고 나오면서 저런 작품을 만든 사람은 머릿속에 뭐가 들었나 궁금해지지만 얼마 뒤면 금방 잊어버린 작품이 많지만요.
아무튼 수많은 작품들이 제 기억 속에서 스쳐지나갔지만 결국 제가 선택한 내 인생의 영화는 <미션>(롤랑 조페, 1986)입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만 아마도 1986년 말이나 87년 초 부평역 근처의 어떤 극장에서 본 것 같습니다. 부평역 근처이니 부평극장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제가 최근에 가보질 못해서….
그때 저의 상황은 군 제대 뒤, 입대 전에 다니던 학교에 복학하지 않고 학원을 다니면서 입시준비를 하고 시험을 치른 뒤에 학과를 선택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학과를 선택하지 못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 응시했다가 면접날 용기가 없어서 응시하지 못했던 학과에 다시 가고 싶어서 공부는 했으나 나이를 계산해보니 졸업 뒤엔 입사 시험을 볼 수 없는 나이이기에 낙담하고 있던 때입니다. 그때까지 저의 꿈은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_^
심란한 마음에 영화를 볼까 하고 나갔다가 <미션>을 보게 되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영화는 자주 보러 다녔지만 영화에 대한 꿈을 꾸거나 더더욱 배우에 대한 생각은 꿈도 꿔보지 않았던 때이기에 최소한의 상식으로 ‘로버트 드 니로’가 나온다기에 막연히 보고 싶단 생각으로 극장에 들어가서 영화를 보는데,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에 이끌려 빨려들어간 영화의 후반부에 자신의 의지와 신념대로 총탄이 날아오는데도 의연하게 걸어가다 죽음을 맞이하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 불이 들어올 때까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다행히 극장 안에 관객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울다 정신을 차려보니 왠지 쑥스럽더군요. 그래서 남는 게 시간이었던 시절이었고 부은 눈도 가라앉힐 겸 또 보기로 마음먹고 다시 한번 봤습니다. 그때는 한번 표를 사서 들어가면 본인이 나가기 전까진 계속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_^
그런데 바로 전에 봤던 영화의 느낌은 사라지고 감흥이 없더군요. 그래서 처음 봤을 때 눈물이 쏟아졌던 그 장면이 나오기 전에 극장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왜 울었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은 그동안 무기력하게 살아왔던 자신이 부끄러워서 흘린 눈물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즐거웠던 일은 무엇을 할 때였나?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은 과연 무엇인가? 그 일을 결국 이루지 못하더라도 내 의지대로, 신념대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인가? 직접 부딪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고민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결국 연극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고 연극영화학과를 선택하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운좋게 원하던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고 그 이후에 학과 수업을 통해서 제 삶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이렇게 내 인생의 영화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되었습니다.
<미션>은 20년 전 고민만 많았고 어떤 희망을 꿈꾸지 않았던 시절에 저를 돌아보고 꿈을 꾸게 만들어준 영화입니다. 내 인생의 영화를 생각하면서 비록 치기어린 생각이었지만 세상에 대한 치열함이 예전에 비해서 많이 사라진 것 같은 생각에 반성도 하고 치열함이 사라진 자리에 유연함이나 세련됨이 더해졌나에 대해서 돌이켜보았지만 아직은 먼 것 같습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덧붙여 고백하자면 최근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질 못했습니다. 집에서 보는 영화와 극장에서 보는 영화의 느낌이 많이 다름을 알면서도 이놈의 게으름 때문에….
앞으로 가능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내 인생의 영화’를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