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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무서운 이미지

버지니아 공대를 나와 현지에 살고 있는 꽤 먼 친척이 있어 ‘버지니아 총기난사사건’에 관심이 갔다. 그러다보니 대한민국 정치계가 그곳 희생자들에게 일동 묵념을 올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런데 나는 그들이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 때 단체 묵념을 했다는 소식은 접한 바가 없다. 그들이 미국에서 벌어진 일에는 묵념을 올린다. 버지니아 총기난사사건은 ‘한국인’의 잘못이 아니라 ‘미국사회’의 잘못이고,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 참사가 ‘한국사회’의 잘못이다. 하지만 지금 말하려는 게 이 엉터리 묵념의 유무에 관한 건 아니다. 그건 시사 주간지 기자들이 더 잘 쓸 일이다.

조승희씨가 남긴 영상물 소식을 접하면서 과거에 있었던 다른 영상 메시지들도 떠올랐다. 중학교 여학생들이 한 여학생을 폭행하고 그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여러 지역에서 각각 다른 학생들에 의해 빈번하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2004년에 대한민국 평범한 노동자 한 사람이 지구 저편에서 테러리스트들에게 목숨을 잃는 잔인한 장면이 촬영되었는데 그가 김선일씨다. 이유와 사정은 다르지만 이 세 이미지가 갖는 효과는 완벽하게 같다.

조승희씨의 범죄가 인종차별적 ‘학대’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현지에서 나오고 있다. 나는 만약 잠시 전에 말한 그 학대당한 여중생이 가해자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마음먹고 행동에 옮길 때 어떤 영상을 남기게 된다면 조승희씨의 지금 메시지와 유사한 걸 남길 것이라는 상상이 들었다. 민족과 국가 차원에서 이미 그 일을 태연하게 저지른 것이 테러리스트들의 김선일씨 피살 비디오다. 대상과 크기가 다르지만 그것들은 모두 하나같이 ‘증거이며 협박이고 심판’이다

나는 이 이미지들의 횡행이 무섭다. 다른 희생자들만큼 조승희씨가 가엾지만 그가 남긴 메시지는 두렵다. 그 여학생들이 무섭고 그들이 촬영한 메시지는 그들이 한 짓보다 더 나쁘다. 피해 여학생이 그걸 반복하게 된다는 상상은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을 것이다. 김선일씨의 사건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무서운 이미지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아니 어쩌면 유사한 이유로) 일상에서 판을 친다. 이런 건 하드코어 포르노그래피를 한편 보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적어도 거기에는 카메라와 피사체간에 맺은 역겨운 상업적 동의라도 있다. 그런데 이 이미지들에는 실제의 삶을 절단내는 무차별한 절멸만 있다. 원인은 위축되고 효과에 대한 소란이 더 크게 남는다. 그게 이 영상 메시지가 전하는 엉뚱한 최후 변론이다.

흥미 때문이건 영상 분석을 통해 윤리적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건 이 세개의 이미지를 클릭한 자라면 그도 공범이라고 나는 비약하여 말하고 싶다. 이미 그가 메시지의 적극적 관객이다. 메시지가 발송된 사회적 악연에 대해 분석하고 시정하는 게 더 가치있는 일이겠지만 적어도 이 영상 메시지에 관해서라면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보지 않고 반송하는 게 중요하다고 나는 지금 말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뉴스에서는 너무 많은 메시지들이 흘러나온다. 누군가가 잔학해졌을 때 혹은 그 잔학성에 더 잔학하게 복수할 때 몸의 폭력이 모자라 카메라를 쥐는 무서운 이미지-메시지의 시대. 재현물에 관해 말하고 써서 밥 벌어먹고 사는 내 위치가 이럴 때 아슬아슬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