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표제의 ‘vs.’는 허풍이다. 내 눈에 비친 두 사람은 민주공화국 시민의 양식을 공유하고 있고, 생각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나는 &나 as well as로 두 이름을 이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좀 더 자극적인 ‘vs.’를 넣은 것은 좀 더 많은 독자를 낚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한윤형씨는 군복무를 마치고 얼마 전 학교로 돌아온, 철학 전공의 복학생인 듯하다. ‘듯하다’, 라고 한 자락 깐 것은 내가 그와 친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의 글을 처음 읽은 것은 꽤 오래 전이다. 새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인터넷 사이트라는 델 처음 들어가 본 것은 막 새 천년을 맞았을 때다. 그 사이트가 <인물과 사상> 홈페이지였다. 정치학자 최장집씨의 사상을 검증하겠다고 조선일보가 거들먹거리면서 시민사회 일각에서 일기 시작한 ‘안티조선’ 운동이라는 것이 세상에 알려질 무렵이었고, <인물과 사상> 홈페이지는 그 운동의 한 근거지였다. 자신을 고교생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아흐리만’이라는 닉네임으로 그 사이트 게시판에 바지런히 글을 올리고 있었는데, 고교생이 썼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글이 (여러 의미에서) 어른스러웠다. ‘아흐리만’(옛날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어둠의 세계를 다스린다고 자신들이 상상한 신을 이 이름으로 불렀다 한다)이라는 닉네임에서 설핏 읽히는 위악만이 덜 어른스러워 보였다.
그 시절 안티조선 운동에 발 담갔던 한 친구를 지난주 술자리에서 보았다. 문득 ‘아흐리만’이라는 이름이 떠올라 그 친구에게 아흐리만의 실명과 근황을 물었다. 친구는 그의 근황은 알지 못했으나, 이름이 한윤형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이름으로 구글을 뒤져보니 그의 블로그에 실린 글이 여럿 떠올랐다. 나는 아예 한윤형씨의 블로그에 들어가 두 시간 남짓을 보냈다. 그가 철학 전공의 복학생이리라는 짐작은 그의 글들을 훑고 나서 하게 된 것이다. 고교생 시절의 조숙이 워낙 인상 깊었던 터라 그가 그동안 더 ‘어른스러워’졌는지는 판단하기 어려웠으나, 그 글들은 만개한 시장사회를 버텨내는 한 젊은이의 정치적 문화적 감수성으로 뾰족했다.
한윤형이라는 이름 옆에 최익구라는 이름을 놓는 것을 나는 꽤 망설였다. 한윤형씨와 달리, 최익구씨는 내가 사적으로 모르는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한해에 한두번쯤 만나는 술친구다. 공적 지면에 제 친구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그러나 내게 그런 전과가 없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도 두 이름을 나란히 놓는 것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해, 나는 뻔뻔해지기로 했다. 최익구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다 휴학하고 지금 공익 근무를 하고 있다. 한윤형씨의 동갑내기가 아닌가 싶다. 그가 개인 홈페이지를 지니고 있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는데, 한윤형씨 글들을 읽다가 내친김에 최익구씨의 홈피에도 들어가 보았다. 전자우편으로만 읽어보던 그의 글을 한꺼번에 여럿 읽고 있자니 다시 한윤형씨 생각이 났다. 크게 다르지 않은 교육 배경을 지녔을 이 두 동년배가 취향이나 기질에서 꽤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블로그는 일종의 일기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공개된 일기장이다. 그곳에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뒤섞이고, (사회적) 윤리와 (개인적) 도덕이 미묘하게 맞버티며, 드러냄의 욕망과 감춤의 솜씨가 서로 스며든다. 낯선 사람의 블로그를 들여다보는 재미는 거기서 나올 것이다.
한윤형씨와 최익구씨는 둘 다 만만찮은 독서가인 듯한데, 철학도의 취향이 새것에 쏠려 있다면 경영학도의 취향은 옛것에 쏠려 있다. 둘 다 개인주의자이지만, 한쪽의 개인주의는 민중의 벗 겸 검술교사가 되고자 하는 프티부르주아 지식분자의 욕망으로 눅눅해지고, 다른 쪽의 개인주의는 백성의 살림을 걱정하는 사대부 독서인의 목민의식으로 불순해진다. 한윤형씨의 언어는 날카롭게 벼려져 있고, 최익구씨의 언어는 넉넉하게 다습다. 그 날카로움이 냉소주의의 각박함으로 졸아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넉넉함이 온정주의의 무원칙으로 흐물흐물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치적 존재로서, 이 두 사람이 제가끔 한국 정치의 공간에서 자신들에게 부여한 좌표도 사뭇 달라 보인다. 한윤형씨에 견줘 최익구씨는, 그의 닉네임 ‘새우범생’이 암시하듯, 주류 정치질서에 더 너그럽다.
그러나 이들이 부리는 지식과 정보의 총량은, 그리고 그 앎에 떠밀리는 생각과 느낌의 포물선은 이들 나이 때의 나에게 견주어서는 물론이고 지금의 나에게 견주어서도 한결 크고 아리땁다. 나이는 한 사람의 지적 정서적 윤리적 성숙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겠다. 나는 이들보다 두배는 더 산 듯싶다. 다행이다. 나이 차가 이만큼 크지 않았다면, 나는 질투심 때문에 이들의 글을 읽기 힘들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