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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향한 알폰소 쿠아론의 물음, <칠드런 오브 맨>
ibuti 2007-05-04

유니버설이 제작 혹은 배급을 맡아, 10년 간격으로 등장한 세편의 SF영화 <브라질>(1985), <12 몽키즈>(1995), <칠드런 오브 맨>(2006)이 비슷한 운명을 밟은 건 단지 우연일까? 미국 개봉 당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흥행에도 실패한 세 작품은 이후 보란 듯이 ‘기념비적인 SF영화’로 남았다. <칠드런 오브 맨>은 P. D. 제임스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그녀의 미스터리 추리소설 사이에서 <칠드런 오브 맨>은 특이한 위치를 점한다. 모더니즘 작가인 그녀는 빅토리아 시대가 완고하고 괴팍하다고, 현대의 젊은이들이 무책임하고 신중하지 않다고 불평하곤 했으나, <칠드런 오브 맨>에서처럼 우울하고 절망적인 미래를 그린 적은 없었다. 전쟁, 혁명, 폭력, 탐욕의 시대로 과거를 정의했던 그녀가 다가올 미래를 더 혹독한 시간으로 예언한 이유, 그것을 아는 게 작품을 이해하는 길일 것이다.

2027년 11월의 미래가 궁금한가요?

2027년(사진1, 원작은 2021년이다), 인간이 아이를 낳지 못한 지 18년째 그리고 문명과 인간이 절망 속에서 종말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주인공 테오 앞에 20년 전에 헤어진 줄리안이 나타나 불법체류자 소녀 키이가 해안으로 갈 수 있도록 통행증을 부탁한다. 얼마 뒤, 키이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된 테오는 인간의 마지막 희망(사진2)이 될 길을 같이할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기존 SF영화의 극도로 비현실적인 미래사회는 여기에 없다. <칠드런 오브 맨>이 무서운 건, 미래가 2007년의 현실과 놀라울 만치 비슷하기 때문이다. 타인(종)에 대한 거부와 무관심, 질병과 공해, 비생산적인 활동, 말초적인 쾌락, 죽음과 공포의 조장, 폭력, 증오, 살인, 혼란, 전쟁. 현실이 바로 묵시록적인 상황이라고 말하는 <칠드런 오브 맨>은 임신한 소녀 옆으로 세 사람을 배치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 반체제 활동을 했던 과거를 접고 삶의 무의미함을 이유로 돈과 현실에 안주하는 차가운 인물이 된 테오, 여전히 반체제운동에 앞장서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줄리안, 딥 퍼플과 롤링 스톤스의 옛 노래와 마약이 삶의 낙인 늙은 히피 재스퍼가 그들이다. 하지만 셋은 희망이 아닌 그것을 향한 끈일 뿐이다. 낭만적이지만 회고적이고 도피적인 재스퍼와 조직의 이해관계와 실패한 혁명의 반복에 휘말린 줄리안은 물론, 마침내 변화된 삶을 선택하는 보통 사람들의 영웅 테오에게도 죽음은 가차없다. <칠드런 오브 맨>이 희망을 거는 건, 아기 예수처럼 소외되고 가난한 곳에서 태어난 생명과 그녀의 흑인 엄마다. 그런데 원작에 있었던, 엄마의 미소와 남자가 흘리는 참회와 감격의 눈물과 아기의 세례는 영화에 없다. 영화는 빛을 잃은 바다와 희미한 불빛과 흔들리는 보트의 모습으로 끝난다(사진3). 원작이 믿음을 근거로 확실한 희망을 꿈꾼다면, 영화의 그것은 꺼질 듯 말 듯 불안하기 그지없다. 슬라보예 지젝은 <칠드런 오브 맨>이 역사가 부재하는 후기 자본주의사회의 이념적 절망에 대한 최고의 진단이라고 했다. 문명의 시대를 자부하는 인간은 그들이 다시 암흑의 시대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질문해야 할 것이며, 안락함과 쾌락이 아닌 유의미한 삶의 어떤 것을 찾아야 할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 인간의 마지막 희망.

묵시록 혹은 희망의 시작.

현장에서의 클라이브 오언과 알폰소 쿠아론 감독.

영화강의 중인 슬라보예 지젝(영국 DVD 부록).

개봉되지 않아 스크린과 DVD의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청록색이 주조를 이룬 영상이 준수한 수준임은 분명하며, 킹 크림슨부터 존 테브너 경까지의 음악과 액션장면의 현장감을 잘 표현한 소리도 만족스럽다. 부록은 촬영현장을 담은 ‘공격받는 사람들’(사진4, 8분)만 수록돼 아쉬운 편이다. 해외 DVD의 부록- 영화의 주제에 대해 7명의 학자와 사회운동가들의 말을 들어보는 ‘희망의 가능성’, 지젝의 영화강의(사진5), 3개의 삭제장면, 주인공 분석, 미술 분석, 출산장면 특수효과 분석- 이 부럽기만 한데, 그렇다고 포기하진 말자. 다행히 홈페이지(http://www.childrenofmen.net/)에 가면 주요 부록들을 볼 수 있도록 해놓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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