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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은 무엇으로 이뤄지는가, <밀양> 첫 공개
문석 2007-05-02

일시 5월1일 오후2시 장소 서울극장

이 영화 사고로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아들 준이와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살기 위해 내려온다. 도착하는 첫날부터 우연히 만나게 된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은 신애의 밀양 정착을 도와주며, 꾸준히 애정공세를 펼친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새로 맺으면서 밀양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신애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비극이 벌어진다. 아들 준이가 유괴된 것이다. 이 사건이 마침내 충격적인 결말에 다다르자 신애는 실성하게 되고 마침내 신앙에 귀의한다. 그리고 신애가 유괴범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은 순간, 일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과연 ‘조그마한 햇살’ 안에도 담겨있는 신의 뜻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것은 신애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가 작가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에서 착안했다고 설명한다.

말말말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떨린다.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서게 될 것을 생각해더라면 더 열심히 했을텐데, 자꾸 까먹게 된 것 같다. (웃음)” _ 전도연

“저도 <밀양>을 찍으면서 연기를 좀 해보려고 할 때 쯤 촬영이 끝나서 아쉽다. (웃음) 다음부터는 처음부터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웃음)” _ 송강호

100자평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여인은, 과연 무엇을 동력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증오와 용서, 화해와 구원이라는 해묵지만 절박한 주제를 끄집어낸 이창동은 이야기의 힘으로 <밀양>을 이끌어 간다. 그녀는 아이를 잃고, 그녀는 하나님을 얻고, 다시 그녀는 모든 것을 잃는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오아시스>에서 영화언어로 한 발 내딛었던 이창동은 <밀양>에서 다시 문학으로 회귀한다. 하지만 퇴보나 타협이 아니라, 문학적 영화로의 한 걸음이다. 이야기가 중요하지만, 단지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밀양>의 치명적인 아우라를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전도연과 송강호의 연기는,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의 열연을 뛰어넘는다. 김봉석/영화평론가 김기덕의 용서가 추상적이고 영적인 것이었다면 이창동의 용서는 땅 위에 굳게 뿌리내리고 있는 듯하다. 인생에서 절망의 끝까지 맛본 자가 구원에 어떤 식으로 다가가는지 혹은 끝내 다가가기를 얼마나 머뭇거리는지를 처절할 만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밀양’이라는 지명 안에 숨은 ‘빛’을 찾아내는 것으로 시작된 영화는 칠흑같이 어두운 삶 속에서 영혼의 ‘빛’을 향해 자지러지듯 절규하는 인물의 내면을 담아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자기기만이었는가를 깨닫는 주인공 신애의 여정은 눈물겹지만 신파로 침잠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를 택하면서도 보편적인 정서로 녹여내고, 끊임없는 질문과 시험을 통해 답을 얻어가면서 끊임없이 거리두기를 해나가는 감독의 성실한 연출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 언제나 기대한 것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는 전도연과 송강호의 완벽한 연기 앙상블이 이 작품에 힘을 더한다. 신애의 극적인 감정을 점층적으로 폭발해가면서 정서적으로 하강하는 전도연의 연기 때문에 극이 지나치게 무거워질 때마다, 일상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종찬 그 자체처럼 보이는 송강호의 연기가 작품에 탄성을 부여해 다시 튀어오르게 만든다. 게다가 실감나는 사투리와 삶에 밀착된 연기를 보여준 수많은 조연배우들의 에너지는 ‘밀양’을 은유적인 의미로 밀봉시키지 않고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이창동 감독이 지금까지 보여준 역량에 플러스 알파가 더해진 수작이다. 김지미/영화평론가 삶의 비의(秘意)를 추적하는 감독의 끈질긴 시선이 느껴진다. 형이상학적인 주제의식을 밀양이라는 구체적인 공간 안에 촘촘히 풀어놓았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초월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등이 위태롭게 아귀를 맞춘 채 겨우 지탱되는 우리 삶의 남루함을 잡아낸다. 전도연, 송강호는 더 말할 나위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속물’ 종찬은 인간적으로 너무 정이 간다. 러닝타임이 다소 긴 느낌이어서 일부 장면들을 축약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현경/영화평론가 경솔하고도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밀양>은 구원에 대한 영화다. 이창동 감독은 한 여인에게 형언할 수 없는 비극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종교적 딜레마를 동시에 지워준 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용서와 구원이라는 명제가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를 묻는다. 하지만 <밀양>은 종교와 구원에 대한 관념론으로 빠지는 법 없이 작가영화이자 좋은 대중영화라는 두가지 명제를 아름답게 합치시킨다. 전도연의 연기는 입이 딱 벌어진다. 한국 영화사에 남을 명연이라 상찬하는 것이 조금도 겸연쩍지 않다. 김도훈/<씨네21> 기자 <밀양>의 이야기는 굳이 쪼갠다면 4부로 나뉜다. 한 여인이 낯선 곳에서 맞는 불안감을 보여주는 1부, 여인이 유괴사건의 고통 속으로 빠져드는 2부, 그 여인이 용서와 화해의 세계로 나아가는 3부를 거쳐, 다시금 용서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끼며 절망하는 4부에서 영화는 본색을 드러낸다. 셋째 단락까지 전개됐던 죄와 벌, 용서와 구원의 주제가 문제적으로 제기될 뿐 아니라 이때까지 응축됐던 캐릭터들의 감정이 한꺼번에 북받쳐 밀려온다. 신에 대한 배신감, 용서에 대한 회의, 구원의 불가능성 등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건, 그녀가 다시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그녀의 삶에 각인된 고통의 인장이 지워지지 않을 것은 확실하다. <밀양>은 신애로 집중되는 온갖 고통을 스크린을 통해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이시키는 영화다. 2시간20분이라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은 것도 그 견디기 힘든 고통의 긴장력이 팽팽하기 때문일 것. 다른 요소를 다 제쳐놓더라도 <밀양>은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만족을 주는 영화다. 전도연의 대단한 연기야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딱 필요한만큼만 드러나 보이는 송강호의 연기 또한 감탄을 절로 하게 만든다. 그리고 조연과 단역에 이르기까지 누구 하나 튀어나오지 않고 고른 연기력은 이 영화를 그야말로 '연기의 잔치판'으로 만들어준다. 문석/<씨네21> 기자

바야흐로 이청준의 시대인가? <천년학>에 이어 <밀양>역시 이청준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이청준의 1985년 단편<벌레 이야기>는 용서와 구원에 관한 딜레마를 꼬집은 소설이다. 아이를 유괴로 잃은 여인이 오랜 번민끝에 범인을 용서하지만, 그 '용서의 증거'를 얻기위해 면회를 갔다가, 먼저 하나님을 영접하고 용서와 구원을 얻은 범인을 보고, 용서의 기회마저 신에게 박탈당한 절망감으로 자살해버린다는 내용의 단편을 두고 이창동은 원인과 결과와 과정에 살을 붙였다. 첫째 원인에 대해서, 그녀의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붙인다. 그녀는 남편의 외도를 편집증적으로 부인(denial)하고 싶어서 연고도 없는 남편 고향에 와서 산다. 또 자신이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서, 돈 있는 척 강한 척 허세를 떤다. 그녀의 강박적인 자기-부인은 유괴와 실존적 파탄의 원인이 된다.

둘째 결과에 대해서,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후를 그렸다. 그녀는 신을 저주하고 자신을 시험하고 미쳐가지만, 끝내 살아남아 한줌 햇볕을 다시 맞는다. 아직 범인의 딸을 받아들이진 못하지만, 신의 은총 같은 '비밀의 햇볕'을 차츰 더 느낄 수 있으리라.

셋째, 과정에 대해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원작의 남편 대신, 그녀 곁을 맴돌며 그녀를 지탱해주는 투박한 남자를 그렸다. 그는 지방 소도시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남자이면서도, 실은 가장 이상적인 '의지할 수 있는 남자'이다. 진지한 주제의식에다가 '멜로영화->유괴영화->기독교영화->메디칼 영화'의 네 장르로 변천되는 중편소설 이상의 분량을 지닌 이야기 덕에, 런닝 타임은 길어지고 화면과 대사의 밀도는 너무 높아서, 관객은 쾌감 보다는 피로를 느끼기 쉽다. 그러나 전도연의 불세출의 연기와 송강호와 다른 조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과밀한 이야기가 주는 피로감을 상당히 경감시켜 준다. 칸느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의 낭보가 전해지길 기대해본다. 황진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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