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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게 사는 거지, <비밀과 거짓말>

EBS 5월6일(일) 오후 2시20분

가까운 관계일수록 폭로되지 말아야 할 선의의 거짓말, 착한 비밀이 있는 법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영원불멸한 비밀은 없다. 비밀과 거짓말은 언젠가 벌어지고 말 드라마틱한 공개의 순간을 전제한다. 뒤늦게 속살이 드러난 비밀은 이미 선의의 의도를 잃고 상처와 고통과 돌이킬 수 없는 후회로 다가온다. 그러니까 요지는 세상에 착한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소모할 에너지를, 비밀을 활짝 열고 다시 관계를 처음부터 시작하는 데 사용할 일이다. 마이크 리의 <비밀과 거짓말>을 보면서도 그런 확신이 든다. 인생이 비밀과 거짓말로 켜켜이 쌓여 투명하지 않을수록, 인간은 온갖 망상과 애정결핍과 불행에 시달린다. 공개의 순간은 처참하게 괴로워도 그 순간을 견디고 나면 상대와의 관계에는 또 하나의 길이 열릴 것이다. <비밀과 거짓말>을 보면서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되는 건 켄 로치의 영화다. 영국 노동계급의 남루하고 질척거리는 가정사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다. 그러나 마이크 리는 켄 로치의 직설적이고 선동적인 방식보다는 영국인들 특유의 속성에 날카로운 현미경을 들이대며 관계를 해부하는 방식을 택한다. 이 영화에서도 하층계급의 가정을 중심으로 얽힌 관계의 망은 단순하지 않다. 공장 노동자이자 남편없이 딸을 키운 신시아, 청소부로 일하는 딸 록산느, 신시아가 희생적으로 키운 동생 모리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모리스의 아내 모니카, 그리고 신시아가 젊은 시절 입양보낸 또 다른 딸 호르텐스. 이들 관계의 본질이 한 꺼풀씩 드러날 때마다, 영화적 공간은 인물들의 감정이 각각 다른 층위에서 파열되는 소리로 가득 찬다. 이를테면, 신시아와 호르텐스의 만남은 단순히 모녀의 상봉이 아니라, ‘백인’ 엄마와 ‘흑인’ 딸의 만남, 백인 하층민과 흑인 중산층의 만남 등의 의미로 복합적으로 읽힌다. 마이크 리는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에 계급, 인종, 성으로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깔아둔다. 그리고 그 실타래의 무게 앞에서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지만, 서서히 그 무게를 감당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받아들여가는 인물들의 심정적 변화를 보여준다. 이는 곧 관계가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참고로, 신시아를 연기한 브렌다 블리신은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는데, <비밀과 거짓말>을 말하면서 그녀의 연기를 언급하지 않는 것은 영화의 절반만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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