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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없는 것들`의 용도는?
2001-10-17

김봉석의이창

● 여느 때처럼, 얼마 전 일본을 가서도 밤에는 늘 TV 앞에 앉아 있었다. 유흥가를 찾아가지 않는 이상, 일본의 밤을 가장 느긋하게 즐기는 방법은 방안에 틀어박혀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조용하고, 한적한 기분을 느끼기에는. 차를 마시면서, 센베를 또각또각 잘라먹으면서, 딱히 목적없이 TV를 보면서, 무위로운 나날을 보내는 건은 꽤 즐거운 일이다. 저번에 왔을 때는 유난히 요리솜씨로 승부를 겨루는 ‘초밥왕’류의 요리프로가 눈에 띄더니만, 이번에는 ‘초자연 현상’을 다루는 기괴한 프로그램들이 눈에 들어왔다. 귀신이나 미스터리 서클이나 기공 같은 것들을 흥미 위주로 다루는.

한 프로그램에서는 초자연 현상을 놓고 긍정파와 부정파가 일대격론을 벌인다. 심사위원단도 구성되어 있는데, 심사위원장은 기타노 다케시다. 감독이나 배우로서의 기타노의 모습과는 달리, 약간 맛이 간 모습으로 나온다. 긍정파의 직업은 UFO 연구가, 르포라이터, 기공사 등 주로 비공식적 직업군이었고, 부정파는 딱 보기에도 질서정연하게 보이는 학자가 주류였다.푸에르토리코에 출몰한다는 흡혈동물 추파카푸라의 정체, 공중부양은 정말로 가능한가 등의 주제를 놓고 현지 취재를 한 후에 격론을 벌이는 형식이다. 토론방식도 그렇고, 등장인물들의 면면도 그렇고, 어떤 결론을 내린다기보다는 재미있는 양측의 의견(때로는 황당한)을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어떤 프로그램에서는 메이지유신 때 참수당한 모습을 그대로 그린 조상의 영정을 방송사에 가지고 나와 진행을 하는데 갑자기 감은 눈 부위에 눈동자 같은 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70년대의 녹화테이프를 분석해주기도 한다. 카메라에 이물질이 붙었을 가능성, 그림에 이물질이 붙었을 가능성, 곤충 같은 게 붙어서 움직였을 가능성을 일일이 검증한다. 물론 결론은 ‘알 수 없다’. <X파일>의 경구처럼, 진실은 ‘저 너머’에 있는 것이니까. 중세에 묻힌 보물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에서는 영매와 동굴탐험가 등이 팀을 이루어 한밤중에 산 속을 헤매다가 갑자기 영매가 빙의되어 이상한 목소리로 스탭을 위협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이상한 물체나 형상이 찍힌 ‘심령 사진’을 영매가 일일이 분석을 해주기도 하고.

한국에서도 <호기심 천국>이나 오락프로에서 가끔 이런 주제를 다룬다. 양적인 차이나, 다루는 방식은 약간씩 다르지만, 순간적인 자극을 주기 위한 목적으로 소비되는 것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초자연 현상’들은 심각하게 그 분야를 직접 다루는 사람들말고는, 대부분 심심풀이용으로 생각한다.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아예 시도하지도 않는다. 긍정파가 사진이나 증거물을 가지고 나오면, 부정파는 ‘신뢰할 수 없는’ 증거라며 반박한다. 사실 그 진위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예를 들어 UFO를 찍은 사람일지라도, 그것이 진짜 외계인의 비행물체인지, 아주 희소한 자연현상인지 확신할 수가 없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많은 사람을 놀라게는 하지만, 프로그램 바깥의 주류사회에서 그런 것들은 용납되지 않는다. 그것들은 세상살이에 쓸모없는 것들이고, 사회를 건설적으로 꾸려나가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것들에 쏠린다. 어린 시절 <어깨동무>나 <새소년> 등에 나오던 조잡한 ‘납량특집’부터 나이가 들어서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고대문명의 수수께끼, UFO에 관한 책 등을 꾸준히 찾아 읽었다. 그런 책들을 찾아 읽은 이유는, 특별하게 없다. 그냥 흥미롭기 때문에, 재미있기 때문에 본 거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확실성보다는 불확실성이 매혹적이라고 뻥을 칠 수도 있고, 혹은 인간의 본성인 ‘지적 욕구’의 뒤틀린 욕망이라고도 할 수는 있을 거다.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그런 잡다한 ‘비상식적’인 지식 혹은 정보 혹은 쓰레기들이 내 직업이나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 적은 없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것들은 잉여이고, 쓸모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보다 보면, 가끔 묘한 생각이 든다. 쓸모없는 것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반대로, 필요한 것들만 존재하는 사회란 얼마나, 단선적이고 강압적인 곳일까. 어쩌면 사회를, 세상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런 부적절하고, 쓸모없는 사소한 것들이 아닐까? 누구도 결론지을 수 없고, 누구도 끝내 말살할 수 없는.(여전히 쓸모없는 생각을 하고 있군.) 김봉석 lotu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