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잡지 밥을 8년째 먹고 있는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계속 평기자로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게 웬 자다 남의 다리 긁는 소리냐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로 경쟁지에 있을 때 자기 얼굴에 침 뱉어가며 불만을 털어놓던 우리였다. 만성피로와 매너리즘 사이에서 한창 정신이 오락가락했을 땐 ‘언제쯤 이 짓을 그만두나’ 부질없는 모색만 일삼기도 했다. 벌써부터 웬 시건방진 소리냐 하겠지만, 그땐 정말 그랬다. 뭐, 지금이라고 열정이 활활 타오르는 건 아니지만, 여하튼. 그런데 만으로 따지고 서양식으로 따져봐도 절대 20대가 될 수 없는 애매한 나이가 되자, 거짓말처럼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속속 업계를 떠나갔다. 새로운 일을 찾아서, 새로운 땅을 찾아서, 새로운 공부를 찾아서 많이도 떠나갔다. 자고로 떠난 자는 멋있어 보이고 남은 자는 지지부진해 보이는 법. 나도 어설프게나마 남은 자에 속했으니, 먼 산 바라보듯 떠난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친구의 선언 아닌 선언은 발상을 조금 달리하게 해줬다. 하긴 한 우물만 파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짝패>에서 이범수가 그랬던가. “강한 놈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거”라고. 물론이다. 오래 가는 놈은 강할 뿐만 아니라 위대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몇 십년째 현장을 누비는 선배들이 대단해 보이는 거다. 영화제에서 백발 성성한 외국 기자들이 열심히 취재하는 걸 볼 때는 심지어 감동적이기까지 했으니까. 하지만 한국에서 백발의 평기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40줄에 접어들면 풍부한 필력을 묻어둔 채 ‘장’이 되거나 비즈니스로 투입돼야 한다. 그게 현실이다. (어디 책을 만드는 사람뿐이랴.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한 영화평론가가 그랬듯, 중견감독들의 맥이 끊긴 한국 영화계는 딱 “애비 없는 자식”꼴이다. 그래서 무슨무슨 ‘장’이나 무슨무슨 ‘교수’가 아닌, ‘현역감독’ 임권택이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각설하고. 그래서 너도 백발의 평기자가 되고 싶은 거냐, 물으신다면 솔직히 자신없다. ‘오래 가는 놈’ 운운하는 이 와중에도 ‘어떻게 하면 무위도식할까’ 현실감 없는 꿈만 뇌까리고 있으니, 나란 인간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