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詐欺)’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나쁜 꾀로 남을 속임’이다. 달달한 말과 그럴듯한 이유로 상대를 꼬드기는 이른바 사기는 종종 뉴스에도 등장하고 사기꾼은 악질적인 인간으로 분류하는 게 세상의 법이지만, 영화 속 사기꾼은 그와는 약간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소녀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하다가 사기꾼이 되는 사람도 있으니 영화 속 사기꾼들은 연민의 대상이 되거나 한발 더 나아가 영화팬들의 애정공세를 받게 되기도 한다. 영화에서 만난 최고의 사기꾼들을 통해 왜 그들이 사기꾼으로 살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게 되는지를 살펴본다.
5위 <하나와 앨리스>
지난 겨울에 개봉한 <훌라 걸즈>를 본 남자들의 한마디는 영화에 관한 게 아니었다. “아오이 유우가 예쁘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던 것. 그녀의 조금 더 풋풋한 모습을 보고 싶다면 <하나와 앨리스>를 추천한다. 이 영화는 거짓말쟁이 소녀가 저지르는 앙증맞은 사기행각을 이와이 순지적인 핑크 월드를 통해 보여준다.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소녀 하나(스즈키 안)는 어느 날 전철역에서 만나 짝사랑하게 된 학교 선배 미야모토(가쿠 도모히로)를 미행하다 그가 머리를 부딪혀 기절하는 것을 목격한다. 얼마 뒤 깨어난 미야모토에게 하나는 깜찍한 거짓말을 한다. “선배, 기억 안 나요? 선배가 나 좋아한다고 고백했잖아요”라고. 하나는 미야모토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자신과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며 윽박지르고, 단짝친구 앨리스(아오이 유우)까지 이 귀여운 사기극에 동참시켜 사랑을 이어가려고 노력한다. 이런 예쁜 소녀의 거짓말이라면, 기꺼이 속아주고 싶어할 남자들이 더 많지 않을까?4위 <하트브레이커스>
하트브레이커스라는 영어 제목을 한글로 풀어보면 이런 뜻이다. 실연 유발자. 주인공은 꽃뱀 모녀다. 섹시한 몸매, 상대에 맞춘 애교로 뭇남성을 사랑의 늪에 빠뜨려 결혼에 성공한 뒤 덫을 놓아 이혼에 성공, 결혼식 올린 지 17시간 만에 위자료 30만달러의 소득을 올리는 이들 모녀는 사기꾼 중 가장 애교 있고 능숙하며 매력적이다.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알짜배기 표적을 정해놓고 엄마 맥스(시고니 위버)가 특유의 기술로 그 표적과 결혼하면 곧장 딸 페이지(제니퍼 러브 휴이트)는 그 표적을 유혹하고, 맥스는 새신랑을 외도로 몰아붙여 이혼에 성공하는 수법으로 무려 여덟명의 백만장자의 돈을 뜯어내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탈세 혐의로 벌어들인 돈을 모두 빼앗긴 이들은 작업 장소를 옮기는데, 딸 페이지가 독립선언을 한다. 꽃뱀이 사랑에 빠지면 돈도 필요없더라는 만고의 진리를 코믹하게 보여주는 영화.3위 <캐치 미 이프 유 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작업을 거는데 까짓 거, 사기인 걸 알아도 속아주고 싶은 여자들이 어디 한둘이랴. 그렇다고 이 영화의 주인공 프랭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하트브레이커스>의 모녀처럼 꽃뱀인 건 아니다. 각종 서류와 수표 위조, 나아가 신분 위조에도 능한 프랭키는 실존인물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1965년 FBI를 발칵 뒤집는 사건이 발생한다. 파일럿을 가장해 모든 비행기에 무임승차하는 것은 기본이고, 50개주 은행을 순회하며 무려 140만달러를 횡령한 희대의 사기꾼이 나타난 것이다. 이 사건의 수사를 담당하게 된 FBI 최고의 요원 칼 핸러티(톰 행크스)는 집요하리만큼 오랜 추적 끝에 프랭키를 거의 잡을 뻔하지만 프랭키 역시 고단수!
2위 <범죄의 재구성> 한국 사기꾼 영화의 대명사격이 된 <범죄의 재구성>은 탄탄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꾼’들의 세계를 그린다. 작은 사기가 아닌 큰 사기로 한몫 챙기기 위해 이들이 택한 수법은 바로 팀을 구성해 완벽을 기하는 것. 완벽한 시놉시스 개발자 최창혁(박신양)을 비롯, 사기꾼들의 대부 ‘김 선생’(백윤식), 최고의 떠벌이 ‘얼매’(이문식), 타고난 여자킬러 ‘제비’, 환상적인 위조기술자 ‘휘발류’. 당연하게도, 이들은 서로 믿지 못한다. 이들의 목표는 한국은행. 50억원을 들고 튀는 이들의 계획은 처음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돈은 사라지고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허점이 없는 계획의 허점은 무엇이었을까? 여자와 돈, 그리고 사기꾼들이 등장해 치밀한 두뇌싸움을 펼치는 흥미진진한 영화.
1위 <그녀를 믿지 마세요>
그녀를 사기꾼이라고 해야 할까. 우연히 애정 빙자 사기꾼이 된 영주(김하늘)는 그저 똑바로 살아보려다 사기극의 주인공이 된 경우다. 희철을 연기한 강동원의 순박한 연기와 김하늘의 눈물어린 애교는 속아주고 싶은 거짓말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낸다. 고단수 사기경력으로 별을 단 영주는 출소하자마자 유일한 혈육인 언니의 결혼선물로 준비해둔 목공예 기러기 한쌍을 들고 부산행 기차에 오른다. 이 기차의 또다른 승객 하나는 바로 희철인데, 그는 여친에게 프러포즈할 반지를 들고 부산으로 가는 길이다. 희철이 반지를 도둑맞자 영주는 도둑으로 몰리지 않기 위해 반지를 찾아주려 하지만 가방이 바뀌는 바람에 반지는 영주 손에 들어간다. 영주는 희철의 고향에 가서 반지를 돌려주려다 졸지에 그의 여친으로 둔갑한다. 그녀를 믿지 말라고? 하지만 저 그렁그렁하니 눈물 고인 착해 보이는 눈동자에 저항할 이 누구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