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통속극의 발톱

마음을 할퀴고 몸을 부수는 통속극, SBS <내 남자의 여자>와 MBC <케세라세라>

<케 세라세라>

<내 남자의 여자>

피만 튀기지 않았지 이 정도면 전쟁이다.

상대의 아픈 곳을 찌르는 가시 돋친 말이 챙챙 충돌하고, 온몸을 던진 육탄 공격도 퍽퍽 소리를 낸다.

TV 앞에서 하품을 터뜨리며 DVD를 보는 것도 아니건만 리모컨의 빨리감기(FF) 버튼을 눌러보고 싶어지는 나른한 봄의 드라마 세계에서 잔혹한 멜로 두편이 진득한 집중을 유도하고 있다. SBS 월화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와 MBC 주말극 <케세라세라>가 바로 염통을 쫄깃하게 조이는 말의 배틀과 ‘아휴, 많이 아프겠다’ 싶은 몸의 부딪침으로 신경을 자극하고 있는 두 메뉴. 전자는 김희애·배종옥·김상중 등을 내세운 중년의 불륜담이고, 후자는 에릭·정유미·이규한·윤지혜 등이 나오는 청춘남녀의 사각 러브스토리다. 외피는 눈곱만큼도 새로울 게 없다. 그런데 근사한 이층집, 현대식 고급 오피스텔 등 먹고사는 데 걱정없어 만사 ‘오케이’일 것 같은 배경 아래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이 죽일 놈의 사랑과 욕망 때문에 처절하게 저열해지고 부서지고 있다.

김수현 작가라는 브랜드만으로도 서슬퍼런 대사의 주고받음이 짐작되고도 남는 <내 남자의 여자>는 극중 대사대로 돌팔매질 맞을 게 뻔한, 하필 친구(배종옥)의 남편(김상중)에게 아프로디테의 마술에 걸려버린 불륜녀(김희애)의 전력질주를 다루고 있다. 도덕과 의리보다 현재의 감정과 열정을 거스르고 싶지 않은 이 여인은 관계정리를 요구하는 친구의 언니(하유미)에게 조롱, 자조 등이 섞인 ‘악녀’의 웃음소리로 맞서는가 하면 한대 맞으면 프라이팬으로 머리 갈기기, 두 다리로 옆구리 차기 등으로 두배의 역공을 가하며 살기등등함을 과시 중이다. “색정녀가 돼버린 느낌이야” 같은 김희애의 대사처럼 중년들이 속엣말을 주저없이 진하게 토해내는 이 드라마와 달리 쿨한 신세대가 사랑에 피를 토하는 이야기라는 <케세라세라>는 팽팽한 거짓말의 심리전으로 대사 배틀의 세대차를 드러낸다. 엇갈린 커플을 이룬 뒤 불안한 곁눈질을 지속해온 네 남녀는 겉과 속이 다른 말로 상처주기 대결을 벌이며, 센 척, ‘쿨’한 척을 다 했다. 그러나 바람둥이 ‘발몽’이 그랬듯이 신분상승의 욕망, 유희 등을 적당히 즐겨온 에릭도 질투와 성가심으로 확인된 정유미에 대한 사랑 앞에서 냉정의 끈을 탁 풀면서 지난 4월15일 방송을 기해 겁탈 미수, 여자 뺨 때리기 등 몸부림의 진흙탕에 빠져버렸다.

이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유치해’, ‘쪽팔려’를 자주 외치며 뻔한 불륜과 로맨스를 부정하면서도 통속의 늪에 빠지고 있다. 또 자기 속을 벅벅 긁어내거나 상대를 할퀴고 있지만 실은 독한 척하면 할수록 마음의 가련한 심연을 들켜버린다. 그래서 두 드라마를 보면 ‘스릴’있고 때론 통쾌하면서도 결국 슬퍼진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