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500번의 마감 중 1번일 뿐이야
주간지에서 일한 지 최소한 5년, 한해에 대략 50주는 마감을 했으니, 50에 5를 곱하면 250번은 기사 마감을 했다는 과학적 통계가 나온다. 여기에 1주에 2개의 기사를 쓴 적도 많으니 대략 마감이 400번은 될 터이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통계인고 하니, 힘겨운 마감을 위한 마취약이다. 이번주엔 정말로 원고를 ‘빵구’내는 사고를 치겠군, 긴박한 불안이 밀려들었던 어느 수요일, 그분은 원고를 단숨에 쓰는 기적을 주시진 않아도 구원 같은 깨달음을 주셨다. 아니, 내가 오늘 이토록 괴로워하는 마감도 무려 400번 중에 ‘겨우’ 1번일 뿐이잖아. 갑자기 용기가 백배해 자판을 치는 손가락에 힘이 붙었다. 이렇게 써도 되는 것일까, 또다시 망설임이 손목을 잡을 때면, ‘다음에’ 잘 쓰면 되지 뭐. 또다시 주사를 찾았다. 그렇게 휘청거리는 손가락을 질질 끌면서 그래도 마감을 해왔다. 알다시피, 다음은 여전히 다음으로 남아 있다. 이렇게 불안이 언제나 영혼을 잠식한다면, 포기는 때때로 용기를 북돋운다.
세상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나에게 세상은 두 가지 종류의 사람으로 나뉜다. 신윤동욱을 <한겨레21> 기자로 아는 사람과 <씨네21> 필자로 아는 사람. <한겨레21>에 석삼년을 있다가 <한겨레> 신문에서 두어해를 보내고 <한겨레21>로 돌아왔을 때, 선배가 물었다. “야, 그런데 <씨네21>에도 신윤동욱 있더라.” 어색한 상황을 기발한 유머로 넘기는 재치를 스스로에게 기대했으나 진땀만 흘렀다. 당시 나는 <씨네21>에 방송칼럼을 쓰고 있었고, 선배는 내가 <한겨레> 신문에 간 동안에 <한겨레21>에 입사한 터였다. 선배의 실수가 아니라도, 때때로 나의 세계는 두개를 분열했다. 이제는 초면인 사람이 ‘당신의 기사를 읽었다’는 낌새를 보이면, <한겨레21>인지 <씨네21>인지 대충은 간파할 능력도 생겼다. <한겨레21> 독자들의 한없는 진지함과 <씨네21> 독자들의 도저한 세련됨 사이에서, 이렇게 과분한 행운을 누렸다. 솔직히 가끔은 분수를 모르고 ‘쟤들은 답답해’, ‘니들은 잘났다’ 혼자서 뒷담화도 즐겼다.
1만원을 넣으면 원고지 1매가 나옵니다.
원고지 자판기 아닐까, 스스로를 규정했다. 누군가가 왜냐고 물으면, “원고료 주잖아”라고 답했다. <한겨레21> 마감도 허덕대는 주제에 다른 마감까지 해대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엉겁결에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는, 정말로 ‘이건 1만원 넣으면 1매가 나오는 원고지 자판기 같군’ 하면서 웃었다. 그렇게 몸을 굴리다 탈이 났다. 담배는 철천지 원수였다. 정말 이놈의 니코틴 중독 때문에 담배를 피운다고 담배를 저주했다. 탈이 나고 마침내 담배를 줄였다. 니코틴 패치를 붙이는 법석을 떨면서 담배를 줄였다. 어쨌든 아직은 두달 넘게 하루에 한대만 피우고 있다. 그러고서 알았다. 담배를 즐긴단 사실을 알았다. 요즘엔 온전히 담배를 ‘느끼기’ 위해서 되도록 한적한 곳을 찾아서 담배를 피운다.
은퇴하는 미스 코리아의 심정으로
아마도 이창을 쓰는 심정도 그렇지 않을까. 쓰면서 정말로 쪽팔렸다. 때때로 노출의 수위가 도를 넘었다 싶었다. 그래도 어쩌랴, 철마다 돌아오는 마감에 원고지 10매의 광활한 바다는 어쨌든 메워야 했으니. 노트북 앞에서 막막한 심정이 될 때마다 어서 빨리 고통이 끝났으면 싶었다. 그래도 발가벗는 쇼를 해서라도 광활한 바다를 헤엄쳐 나오면 ‘다음에’ 기대가 밀려왔다. 갈수록 이상한 인정욕구에 시달린다. 진퇴양난의 인정욕구다. 쓰는 일은 괴롭다. 쓰지 않는 일은 두렵다. 그런데 두렵기도, 괴롭기도 정말로 싫다. 그래도 어쩌랴, 이렇게 인생을 수습하는 가운데 늙어간다. 오늘도 역시나 미련이 정겹다. 마지막 이창을 쓰려니, 이건 미스 코리아 왕관 물려주는 심정이 아닌가. 무대 아래의 평민들을 무시하는 각도로 손을 흔들며, 눈물 한 방울의 화룡점정까지 찍으며 고별행진을 하는 미스 코리아의 도도함과 진정성과 가식까지 모아서 이별을 고한다. 마침내 ‘오버’에도 마침표가 찍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