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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후면비사] 웃지 못할 ‘할리우드 진출’ 해프닝
이영진 2007-04-19

존 포드 영화에 김지미 캐스팅 소문… 감독쪽 ‘사실무근’, 영화사 마케팅일까? 감독의 실언일까?

“미쓰 유니버스 한국대표, 미 영화에 출연키로.” 1959년 여름, 국제부 기자들의 관심 중 하나는 세계 미인대회에 참가한 오현주양의 일거수 일투족이었다. 3회 미스코리아대회에서 진을 차지하고 태평양을 건넌 행운의 그녀는 보답이라도 하듯 가십을 연이어 뿌려댔다. 당대의 훈남 토니 커티스(<뜨거운 것이 좋아> <대장 부리바>)와 당시 그의 부인이었던 재닛 리(<싸이코>) 등 할리우드 ‘스타아’들과 환담을 나눈 것뿐이랴. 오양은 롱비치에서 열린 본 대회에서 인기상을 거머쥔 데 이어 파라마운트사의 영화 <수지 웡의 세계> 오디션에 참가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발언이 구설수에 오르긴 했으나, ‘할리우드 진출 1호 연예인’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할지 모를 그녀의 인기는 꺾이지 않았다(아시아 배우들이 경합을 벌인 끝에 윌리엄 홀든의 상대역은 결국 홍콩 출신 배우 낸시 콴으로 결정됐다).

같은 해 8월 초에 한국 여배우의 할리우드 진출 소문도 터져나왔다. 당사자는 김지미, 상대는 ‘지상에서 영원으로’ 함께하고픈 몽고메리 클리프트였다. 김지미의 전속 영화사이던 선민영화사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주한미군과 타이피스트 사이의 러브로맨스”가 기둥 줄거리이며, 존 포드 감독이 연출한다고 밝혔다. 괜한 뻥튀기는 아닌 듯했다. 존 포드 감독은 자신의 <아침 해 솟는 한국 땅>(<Korea>, 1959)라는 다큐멘터리로 보인다)에 잠시 출연했던 김지미에게 ‘천혜의 여배우’라는 칭송을 보냈으며, 3개월 전 방한 때는 파티에 참석한 김지미에게 호의를 보였다고 했다. 또 7월 말에 존 포드 감독은 매니저를 통해 서면으로 5만달러 이상의 개런티를 약속했고, 같은 해 10월에 한국 로케이션을 끝내고 11월부터 할리우드에서 세트 촬영에 돌입할 것이라고 선민영화사는 덧붙였다. 언론에선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으며”, 김지미 또한 개인교습을 통해 영어를 익히고 있다고 전했다.

여전히 구호물자 배급으로 하루 끼니를 충당해야 하는 현실. 장밋빛 미래에 대한 갈망은 그만큼, 아니 그 이상이었다. 정부가 김포공항 건설에 돌입하고 삼백산업(밀가루, 면화, 설탕) 육성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 1950년대 말. 영화계 또한 해외시장 개척이라는 화두를 꺼내들었다. 한해 제작되는 영화가 100편을 넘어섰는데, 언제까지 협소한 시장에서 나눠먹기를 할 순 없었다. 조건이 나쁘진 않았다. 아시아영화제 수상 이후 동남아 수출에 성공한 <시집가는 날>(1957)에 이어 <출격명령> <사랑하는 까닭에> 등이 홍콩, 필리핀 등에 수출됐고(이때 제작자들의 본심이야 헐값에 떠넘긴 뒤 정부로부터 외화수입권을 따내려는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해외합작영화도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연예산업에 대한 선망도 상당했다. 1959년 7월에 신상옥프로덕션이 개최한 ‘뉴 훼이스(face) 콘테스트’에 서울에서만 3천여명의 지원자가 응모했을 정도였다.

그랬으니 김지미의 할리우드 진출에 온 국민의 시선이 쏠린 것도 당연지사. 언론도 줄기차게 출연 여부를 물고 늘어졌다. 진상은 한달도 채 못 가 드러났다. 그동안 선민영화사는 미8군 오락과 소속의 카란이 이른바 대사 역할을 해왔다고 했지만, 미8군 대변인까지 나서 “김지미 양과 이 문제를 놓고 전혀 논의한 적 없다”고 발표했다. 9월3일치 신문들엔 아예 존 포드 감독의 서면 인터뷰 내용까지 보도됐다. LA에 머물던 <동화통신> 이은우 기자가 질의서를 보냈고, 돌아온 답변엔 “나로서는 전혀 아는 바 없다. 그러한 계획에 전혀 관여한 일도 없을뿐더러 그러한 허설(虛說)의 출처조차 알 수 없다”며 “용감하고 아름다운 나라 한국과 한국인들을 사랑하는 동시에 장차 그처럼 원더풀한 나라에 가서 영화제작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만 덧붙여져 있었다. <동아일보>(9월9일)는 김지미의 도미소동을 두고 ‘유졸(維拙)한 선전술’이라며, 개봉 앞둔 영화의 흥행을 위해 스캔들과 루머를 퍼트린 것이라고 단정했다.

아메리칸 드림이 빚어낸 해프닝일까. 할리우드 뺨치는 고도의 마케팅일까. 군부의 농담이 세간에 퍼진 것일까. 실상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존 포드 감독이 김지미를 포함해 한국 여배우들에 대해 상당한 애정을 표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당시 <국제신보> 문화부 기자였던 강대선 감독은 “김지미만 그런 제안을 받았는지 모르겠으나 방한 당시 존 포드 감독이 여러 여배우들과 교섭한 듯 보인다”며 “애당초 조건이 맞지 않아 계약이 유야무야된 것 같다”고 전한다. 허문영 영화평론가의 귀띔도 꽤 재미있다. “촬영 중에도 술을 마셔 제작자와 마찰을 빚을 만큼” 술고래였던 존 포드 감독이 이 무렵엔 촬영을 끝내고 필리핀, 일본 등에 머물며 음주를 즐기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담, 혹시 존 포드 감독이 방한 축하 칵테일 파티에서 여배우들에 둘러싸인 것에 흥분한 나머지 실언을 했을지도 모를 일. 그리고 말 바꾸기를 했을지도 모를 일. 김지미는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어, 아쉽게도 연락이 불가능했다.

참고 <신문기사로 본 한국영화>, <한국영화 정책사>, <사진으로 보는 서울3>, <한국영화전사>,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