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레녹스가 부른 <Ev’rytime We Say Goodbye>라는 노래 가사 중엔 ‘우리가 안녕을 말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어간다’라는, 실로 영등포 길살롱스러운 정취 물씬 풍기는 대목이 등장하는데, 그런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어쨌든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겠다. 왜.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필자는 이 칼럼의 연재를 마치게 되었단 말이지.
지난 2천하고도 4년의 9월부터 시작된 연재니, 장장 2년 반 동안의 시간이었다. 뭐, 정훈이님의 연재기간 같은 시간에 비한다면야 63빌딩 아이맥스 영화관 앞의 청량리 런던극장 정도의 스케일밖엔 안 되겠다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어떤 연재든 1년 이상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놀라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그게 뭐 놀랍냐구. 그럼, 언제나처럼, 마시구. 여튼.
처음엔 길어봐야 일년 이상 계속하지 않을 줄 알았던 이 연재가 이리도 오래갈 수 있었던 데에는 <씨네21>이라는 매체의 태생적 훌륭함이라든가, 함께 연재를 해온 투덜양님의 너르신 내공에 힘입은 바라든지 등등의 많은 요인들이 있었더랬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실 게다. 여기에, 독자 여러분께선 평소 눈치채기 어려우셨겠으나, 필자같이 건망증 심한 필진에게 꼬박꼬박 마감일을 깨우쳐주고, 넘치는 분량을 다듬고, 제목을 뽑고, 부제목을 붙이고 등등의 역할을 해주신 편집기자 분들의 노고에 힘입은 바도 매우 크다는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권은주, 박초로미, 김유진, 신민경 네 기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말씀드린다.
그동안 필자가 투덜의 재료로 삼아왔던 영화들을 쭉 되돌아보니, 별의별 영화들이 다 있다. 50년치 욕을 한방에 먹어도 싼 꾸이구이한 영화도 있고, 사방에서 쏟아진 찬사가 거의 치사량에 육박했던 쟁쟁한 영화도 있다. 완성도와는 완전 별개로, 그 어떤 영화라 하여 만드는 사람의 노력과 고민이 깃들지 않은 영화가 있겠는가.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런 뼈를 깎는 과정보다는 결과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고, 그런 관객의 판단이 결국 영화판을 짜나가고 그 방향을 정하게 되는 가장 큰 요소가 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영화 평론계에선 만드는 사람, 분석하는 사람, 정보 날리는 사람은 있어도 보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이유로 해서 필자는 이 칼럼을 철저하게 한 사람의 관객의 입장에서 쓰자는 원칙을 세웠고, 나름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라고 말은 하고 있다만, 실은 영화를 보면서 그때그때 드는 생각들을 최대한 힘 빼고 쓰려 했을 뿐이다. 독자 여러분께서도 심심풀이 삼아 가볍게 읽어주셨다면 필자로서는 대만족이다.
자, 이제 그럼 정말로 say goodbye를 해야 할 때다. 모쪼록 좋은 영화 많이많이 보시고, 구린 영화도 가끔씩 보시고 하시면서 즐겁게 살아가시길 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