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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있수다] 우리는, 희극지왕
이다혜 2007-04-13

<희극지왕>의 주성치는 엑스트라다. 연기를 하고 싶어 영화촬영현장을 기웃대지만 겨우 들어온 총맞아 죽는 사제 역할을 연기하면서 과욕을 부린 탓에 도시락도 못 얻어먹고 현장에서 쫓겨난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는 법이 없어 엑스트라 담당이 욕을 할 때까지 전화를 하고, 동네 사람들을 끌어모아 공연을 준비한다. 어느 날, 술집 접대부로 일하는 장백지가 손님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방법, 즉 연기를 배우러 그를 찾아오고 둘은 그만 사랑에 빠져버린다. <희극지왕>은 희극이지만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주성치가 장백지에게 살포시 안기는 연기를 지도하자, 장백지는 어느새 다리를 주성치의 허리에 감고 바싹 끌어안고 있다. 주성치가 당황하니 장백지가 별일 아니라는 듯 다리는 풀면서 말한다. “직업병이에요.” 게다가 두 사람이 처음 밤을 같이 보낸 뒤, 주성치는 친구에게 전화를 한다. “일급 호스티스랑 자면 얼마나 줘야 해?” 그리고 과자통에 보관해온 모든 지폐와 모든 동전, 그리고 낡은 시계에 책까지 장백지의 가방 위에 살짝 얹어준다. 그 광경을 본 장백지는 말없이 돈과 물건을 챙겨 나가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대성통곡한다.

<희극지왕>의 웃음과 눈물은 모두 주성치가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냥 가만히 있었으면 아마도 그럭저럭 엑스트라 자리는 보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장백지와 순조롭게 몇번이고 만나면서 우여곡절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주성치는 늘 최선을 다한다.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많이 배려한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웃지만, 그는 언제나 진지하다. 그러면 또다시 웃음이 터진다. 왜 혼자 저렇게 진지한 걸까.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주성치만 혼자 진지한 게 아니다. 누구나 그렇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딴에는 발버둥을 쳐서 잘해보겠다고 한 일이 알고 보니 애초에 전제부터 잘못된 실패작이 될 수도 있고, 딴에는 잘 보이겠다고 열심히 노력한 패션이 글러먹어 주위의 웃음을 살 수도 있다. 웃음거리가 된 사실에 슬퍼하고 있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은 무심히 그 사건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가볍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데도, <희극지왕>의 주성치처럼 어느새 너무 진지해져서 결국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상처를 받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