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4월15일(일) 오후 2시
이런 정치영화를 볼 때마다 매우 암담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비극은 이토록 쳇바퀴처럼 반복되고 세상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리처드 브룩스의 <거짓 속의 진실>이 바로 그런 영화다. 영화가 만들어진 해는 1983년이다. 그런데 영화의 내용과 그 속의 인물들의 행태는 지금의 현실에 적용해도 손색이 없다. 그 20년 동안,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이룬 것일까. 선정적인 사건을 취재하며 명성을 얻은 패트릭. 그는 정치적으로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중동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여기자 샐리를 만나고, 그녀와의 동행길에서 어느 무기상과 마주친다. 샐리는 무기상의 가방에서 수상한 단서를 발견하고 그 정보를 CIA에 넘기던 중 테러리스트가 설치한 폭탄에 살해당한다. 그때부터 무기상의 가방에 들어 있던 핵폭탄에 세계의 초점이 맞춰진다. 패트릭은 테러리스트, 미국 정부, CIA, 그리고 언론사 사이를 오가며 사건을 취재,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영화는 패트릭을 비교적 객관적인 위치에 세워두고 그를 둘러싼 각 조직들의 이권다툼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재선을 앞둔 미국 대통령 록우드와 아랍의 권력자들은 팽팽한 긴장으로 맞서고, CIA와 언론사는 사건에 개입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굳히려 한다. 그 사이 아랍 국가의 지도자가 살해되고, 배후를 밝히는 과정에서 국가간, 조직간에 핵폭탄을 손에 넣으려는 싸움이 치열해진다. 미국 정부는 음모를 꾸며 전쟁 명분을 만든다. 마침내 전쟁이 선포된다. 패트릭은 또 다른 취재를 위해 전쟁터로 향한다.
<거짓 속의 진실>에서 가장 흥미롭고 가장 불편한 부분은 바로 이러한 패트릭의 태도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되는’ 사건을 쫓아 보도하는 일뿐이다. 그러나 적진으로 들어가 카메라를 드는 행위를 용감한 기자 정신의 발현으로만 볼 것인가. 눈앞에서 자신의 몸을 폭죽처럼 터뜨리며 자살하는 저항자들을 그저 찍는 태도가 기자의 책임감인가. 이 영화가 의도한 것 같지는 않지만, 우리는 이 스타 기자를 통해 사건에 대한 취재와 사건에 대한 방관 사이의 묘한 경계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어느 편을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각 집단을 자유자재로 오갔던 패트릭의 정보 수집력도 결국은 어느 한편의 논리로 사용되고 흡수되었다. 취재의 의도와 결과, 기자로서의 욕망, 사실보도 그리고 언론의 윤리 모두 앞에 떳떳할 수 있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