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연도 2000년
제품명 매직파워
대행사 애드벤처
제작사 레드(감독 김현승)
일명 ‘백지영 광고’가 TV전파를 타고 있다. 브랜드 대신 모델의 이름을 타이틀로 사용한 것은 그리 적절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 광고를 지칭하는 통용어가 백지영 CF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이런 이례적인 닉네임이 붙었는지는 굳이 부연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문제. 백지영은 지난해 아주 민감한 화제를 불러모은 주인공이며 ‘그때 그 사건’의 여진이 남아 있는 가운데 탄생한 광고이기 때문에 백지영을 내세운 인터넷사이트 매직파워 광고가 아닌 백지영 CF라는 축약어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이 광고의 탄생배경을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백지영은 사건이 발발하기 전 이 업체와 광고모델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터졌고 백지영은 출연 거절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매직파워쪽은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고 백지영에게 예정대로 출연해줄 것을 설득했다. 결국 난관을 딛고 백지영과 매직파워 광고의 만남은 이뤄졌다. 촬영은 지난해 12월 중순 서해 안면도에서 ‘극비리에’ 있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백지영은 하루에 1시간을 촬영시간으로 할애했고 이에 따라 제작진은 보름에 걸쳐 안면도에 진을 치고 어렵게 촬영을 끝마쳤다.
그렇다면 우여곡절 끝에 결실을 맺은 매직파워 광고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일단 이 CF는 그 사건에 대한 소비자의 기억을 정면으로 겨냥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붉은 노을이 진 바닷가에서 백지영이 처연한 모습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 이내 그는 결연히 일어서며 각오를 피력한다. “이젠 울지 않을 거야. 더이상 울지 않을 거야. 인터넷 세상에 당당히 맞설 거야.” 뒤를 이어 “인터넷 세상, 이젠 겁나지 않아”라는 백지영의 당당한 대사가 마무리를 장식한다.
매직파워 광고는 어떻게 보면 리얼리티를 적극 살린 예로 볼 수 있다. 광고 밖의 세상에서 백지영이 갖고 있는 ‘실제 상황’을 그대로 옮겨왔으니 말이다. 이 CF는 빠르고 강력한 정보유통의 신천지인 인터넷의 희생자로 백지영을 규정한다. 그리고 매직파워의 분신인 백지영의 입을 통해 인터넷 세상에 투명함과 정직함을 불어넣겠다는 그야말로 옳은 가치를 강조한다. 왜곡된 인터넷 세계의 피해자라는 백지영은 잔다르크처럼 용감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얘기를 실감나게 전달하며 광고 메시지에 감정적 호소력을 불어넣고 있다.
백지영이라는 뜨거운 감자격의 모델, 한동안 세간을 들쑤셔놓은 이슈의 메시지화 등 매직파워 광고는 ‘어, 백지영 나오네’라는 호기심어린 반응을 견인할 구석이 충분한 CF인 셈이다.
그럼에도 이 광고는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다. 이것이 백지영을 바라보는 정서가 무관심파, 동정파, 반대파 등으로 엇갈려 있기 때문만은 꼭 아니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과반수 이상이 백지영의 연예활동 재개에 반대했다는 보도도 있지만 이 사이트의 목표소비자가 백지영에게 큰 거부감이 없는 젊은층에 쏠려 있다는 점에서 여론은 큰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광고가 스타의 이미지를 차용해 메시지 전달의 힘을 높이는 것은 일반화한 공식이지만 백지영의 그 사건이 상업적 메시지와 손잡았을 때 얼마만큼 설득력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인가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광고는 진짜 같은 거짓말이며 기분 나쁘지 않은 속임수다. 또 가공의 미학을 얼마만큼 잘 활용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 광고에서 리얼리티란 연출없는 연출이란 역발상에서 기인한 것이지 현실 그 자체를 옮겨와 소비자를 계몽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광고에서 설파하듯 백지영이 진정으로 잘못된 인터넷 세상에 겁내지 않는다면 진지함의 강박관념을 떨쳐버리고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게 더 나은 접근방식이 아니었나 싶다.
국내 광고계에서 화제성 있는 모델의 광고는 사람은 있는데 제품과 크리에이티브는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물론 빅모델 전략은 나쁜 게 아니다. 천문학적인 광고 모델료를 지급하는 것은 기업의 자유다. 광고외적인 모델의 파워를 광고에 맞게 얼마만큼 자유자재로 변주하고 공감가는 새로운 무엇으로 창조하느냐에 따라 투자한 액수 대비의 가치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서태지가 광고계 사상 최고액을 받고 출연해 ‘네 생각이 아닌 건 불태워버려’라고 선동적 메시지를 전하는 프로스펙스 OOC CF는 서태지 하면 예상할 수 있는 메시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싱거운 수준에서 머물렀다. 백지영 광고 역시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정답형 광고에 그쳤다는 인상이다.
매직파워쪽은 론칭 광고인 이번 CF를 통해 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데 목표를 둔 것으로 보인다. 매직파워가 구체적으로 어떤 브랜드이고 네티즌의 어떤 욕구를 채워줄 수 있다는 것인지는 다음 기회로 미뤄둔 것 같다(참고로 매직파워는 인터넷전용망서비스 브랜드다). 백지영 광고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그것이 실은 매직파워 광고였다는 기본적 정체성을 발견하게끔 유도할지 궁금하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