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때 독일과 한국의 해방에서 세계사적으로 의미심장한 곳인 진주만 박물·기념관을 방문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다. 주 볼거리는 애리조나 군함이 가라앉은 유적 바로 위에 설치된 기념관이다. 그러나 물에 떠 있는 기념관으로 가기 전에 기록영화 한편을 보는 것은 의무사항이다. 상영시간은 20분 정도로, 할리우드식으로 1944년 12월7일 젊은 미국인들이 얼마나 참혹하게 죽어갔는지를 묘사한다. 감독은 모르지만 영화관에서 흘러나오는 흐느낌 소리를 듣고 보니 ‘잘’ 만든 모양이다. 영화는 일본군의 야만적인 공격을 자세히 묘사한 다음 마지막으로 다음날 있을 미국의 역공격을 잠시 언급하고 끝난다. 군인인 직원은 관람객을 슬픔의 어두움에서 햇빛으로 가득 찬 진주만으로 풀어준 뒤 유람선에 태워 애리조나호 기념관으로 보낸다. 진주만 한가운데 배에서 내려 15분 동안 비통의 침묵 속에 기념화하라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이 귀한 목숨을 잃어간 것은 무척 안타깝지만, 기념관이 우리에게 기억하게끔 하려는 것보다 필자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영화에서 이상하게도 언급되지 않았던 곳- 가 기억난다.
미국이 설립한 기념관의 의도는 그들이 기억하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다. 맥락은 약간 다르지만 일본 총리 아베는 최근에 “성노예는 없었다”는 망언으로 세계인을 자신의 유람선에 싣고 ‘가짜만(灣)’으로 보내려는 느낌이 든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여름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 <아름다운 나라를 향해>에서 평화적인 헌법을 개헌하고, 야스쿠니 신사의 전범은 범죄가 아니며, 애국주의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선전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총리가 된 뒤 공식적인 ‘정신대’ 망언은 지난 3·1절에 이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사실 아베는 10년 전부터 왜곡된 역사인식을 공식적으로 밝혀왔다. 아베뿐만 아니라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도 1978년에 쓴 자신의 회고록 내용과 정반대로 위안부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최근에 주장하고 나서는 등 일본 극우일당은 국제적인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역사왜곡을 가속화하고 있다.
물론 자기 나라의 역사에 대한 인식과 기억이 극단적이며 일관성이 없는 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차원은 약간 다르지만 홀로코스트가 일어난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독일에서도 찾을 수 있다. 물론 유대인 600만명을 죽인 것과 20만명의 젊은 여성을 성노예로 만든 것은 비교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필자도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상대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자기) 나라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에 대한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점에서 두 참사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본다.
이런 맥락에서 독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인지 모르겠다. 1995년에 니시오카 마사노리라는 사람은 <마르코 폴로>라는 일본 잡지에 유대인 수용소에 독가스를 뿌리는 장치가 없었고 ‘최종해소’(Endlosung)는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계획이 아니라 그들을 이주시키려는 계획이었을 뿐이라며 홀로코스트 존재를 부인하는 기사를 실은 사건이었다. 결국 잡지를 발간하는 출판사까지 문닫아야 했지만, 이후에도 의사 및 언론의 자유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었다. 독일에서 홀로코스트가 ‘거짓’(Auschwitzluge)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독일 형법 제130조(대중선동죄)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로, 외국에서 아니면 외국인이 범했다 하더라도 최대 5년 형벌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법과 관련해서 독일에서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쟁은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헌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는 전체적인 위반이 아니라 하나의 특정 경우에만 해당하며 이러한 주장으로 인간존엄이 유린되는 사람의 권리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내린 지혜로운 결론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런 의미에서 일본은 독일의 역사정리로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자료도 증언도 풍부하지만, 일본만이 그들의 비참한 역사를 철저히 정리하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오늘까지 이러한 극우세력의 삼인성호(三人成虎)식 논란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 우기기만 하면 왜곡된 역사인식이 관철될 줄 알지만, 이 같은 근거없는 허구적 주장보다는 성노예 희생자의 ‘낮은 목소리’가 진실을 말한다.
역사는 징검다리이다. 디딤돌 밟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돌마다 조심스럽고 깨끗하게 정리하고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을 아베 총리도 일본사회도 명심해야 한다.